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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
기사입력: 2021/04/07 [13:37]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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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나무들이 많이 베어진 곳을 발견하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베어 나갔지만 한 그루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자가 그 연유를 묻자 벌목공들은 그 큰 나무는 규칙적으로 자라지 않아서 베어 보았자 사용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장자는 산에서 내려와 친구집에 들렸다. 친구는 장자를 반갑게 맞아 주면서 대접을 하기 위해 마당에서 놀고 있는 거위를 잡으라고 하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하인은 물었다. "가위가 세 마리 있는데 어떤 거위를 죽일까요?" 장자는 하인에게 물었다. "세 마리 다 우느냐?", "아닙니다. 두 마리는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않습니다", "그럼 울지 않는 거위를 죽이거라"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죽어야하는 생물이란 어떤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많은 나무들 중에서 쓸모가 있는 나무는 모두가 베어졌고, 큰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즉 쓸모가 있어 죽었다. 그러나 거위는 나무와는 반대로 쓸모가 없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쓸모가 있는 것」과 「쓸모가 없는 것」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쓸모가 없는 것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쓸모 있는 매우 유용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유용한 것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전혀 쓸모가 없어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것도 본질적으로 간혹 후퇴가 곧 전진(前進)인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즉 물러남으로써 전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돌을 던질 때 팔을 뒤로 당겼다가 다시 팔을 앞으로 당겨야 멀리 돌을 던질 수 있다. 홍콩에서 가장 부호인 리자청(李嘉誠)에 대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자동차 열쇠를 꺼내는데 잘못해서 2위안짜리 동전 하나가 땅에 떨어지면서 자동차 아래로 굴러 들어갔다. 자동차가 움직이면 동전이 하수구로 굴러 들어갈 것 같아 몸을 굽혀 동전을 주우려고 했다. 그러자 경비원이 달려와 자동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 동전을 주워 그에게 내밀었다. 리자청은 동전을 받고 경비원에게 사례비로 100위안을 주었다. 이 소문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질문을 했다. 리자청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동전을 줍지 않으면 동전은 하수구로 굴러 들어가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리고 100위안을 경비원에게 준 것은 그가 돈을 유용하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쓸 수 있지만 불필요하게 낭비해선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렵게 고생하며 힘든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돈의 효용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나 부모의 재산으로 고생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진정한 돈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나는 전자에 해당되는 되어 후자의 사람들을 보면 왠지 짜증이 난다. 아끼고 절약하며 검소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흔히 째째하다느니 구두쇠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리자청(李嘉誠)이 동전 하나 줍는 것을 보고 째째하고 구두쇠라고 할까? 정말 째째하고 구두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가치관은 각자 개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논리에 합당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일하다. 가치관은 논리에 합당해야 한다. 사람의 일생은 얼마나 짧고 허약한가. 스스로 노력하여 행복을 만들지는 않고 복권 한 장으로 저절로 굴러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목표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올바른 가치관이야말로 성공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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