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획/특집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감자 튀김 먹을 때 생각나는 것들…감자 이야기에 빠져들다
기사입력: 2020/10/15 [18:22]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 감자튀김과 마요네즈 (사진출처=위키피디아/뉴스1)   



맛으로 먹기도, 억지로 먹기도 한…주식이 된 감자
캐나다 PEI 주 '감자'…미뢰 경련 시킬 정도의 맛
먹거리로 보는 세계사 중 스토리가 가장 풍부한 감자
'감자 대기근' 아일랜드인 4분의 1 아사…미국 이주 계기

 

Q:감자튀김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는?
A:벨기에
Q:세계에서 감자가 가장 맛있는 곳은?
A:…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감자 농사를 짓는 사람은 자신이 재배하는 감자라고 주장할 터다. 감자튀김의 원조 국가인 벨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벨기에 감자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감자의 고향인 남미 티티카카호 부근의 감자를 맛본 사람은 그곳의 감자가 역대급 최고라고 목에 힘을 줄 수도 있겠다. 나의 제한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캐나다 PEI(Prince Edward Island)주다. 캐나다 북동부 대서양에 면해 있는 섬이 프린스 에드워드섬(Prince Edward Island. PEI). 오대호에서 발원한 세인트로렌스강이 굽이쳐 흘러가다가 대서양 앞에서 만(灣)을 만드는데,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PEI다.

 

▲ 캐나다 지도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주 (사진출처=위키피디아/뉴스1)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 감자 '맛의 감각 경련' 일으킬 정도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지만 PEI주는 명성으로 따지면 온타리오나 퀘벡에 버금간다.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외로운 섬이 된 PEI를 유명하게 만든 건 문학이다.
루시 머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이 PEI이다. 소년·소녀 시절 주근깨 소녀 앤의 유쾌한 긍정 바이러스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빨강 머리 앤'은 주기적으로 새롭게 제작되며 그때마다 신드롬을 일으킨다.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최신작 '빨강 머리 앤'을 감상할 수 있다.


PEI가 자랑하는 두 번째가 감자다. 이 작은 주가 캐나다에서 나는 감자의 25%를 생산한다. PEI를 가는 방법은 비행기와 바다 위에 놓인 연륙교를 건너는 두 가지다. 오래전 PEI를 여행한 적이 있다. 노바스코시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PEI로 가다 보면 진풍경을 목도하게 된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섬의 지세(地勢)가 눈에 들어오는데, 흙색깔이 온통 붉은 색깔이었다.


'흙이 어떻게 저런 색깔이지' 여장을 풀고 호텔에서 식사하는데, 통감자 몇 알이 껍질 채로 큰 접시에 나왔다. 별생각 없이 나이프로 감자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었다. 이가 감자의 단단한 육질 속에 박히고 한 입 삼키는 순간, 미뢰(맛을 느끼는 감각 기관)가 경련을 일으켰다. 세상에, 감자가 이렇게 찰지고 맛있을 수도 있구나. 그전까지 먹어본 감자는 이름은 감자이되 감자가 아니었다. 이것이 PEI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랍스터도 한 마리 먹어보았지만 감자처럼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PEI섬에 머물면서 감자를 여러 번 먹었다. 그때마다 PEI 감자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 뒤로 나의 혀는 한동안 PEI 감자 맛을 잊지 못해 푸석푸석한 감자를 멀리했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을 찾는 여행객들은 반드시 그랑광장에서 프렌치프라이의 원조인 감자튀김을 맛본다. 벨기에 여행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유럽의 대표적 감자 수출국 벨기에가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벨기에 정부는 감자 소비량이 급감하고 수출이 끊기자 '매주 2회 이상 감자튀김 먹기' 운동을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 시장에서 판매 중인 감자   


■먹거리로 보는 세계사 중 스토리가 풍부한 감자

 

먹거리로 보는 세계사는 무궁무진하고 흥미진진하다. 입이 큰 생선 대구(大口)만 봐도 그렇다.
콜럼버스보다 500년 전 먼저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이 바이킹족이다. 이들은 주식인 대구 떼를 쫓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대구는 유럽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생선이다.


먹거리 중 대구 못지않게 스토리가 풍부한 게 감자다. 먼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가히 엽기적인 방법으로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려 강대국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그의 별명은 '감자대왕'이다.


독일 북쪽 변방에서 발흥한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두 번의 전쟁을 통해서였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이다. 전쟁을 승리하긴 했지만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잇따른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인구가 급감해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다. 여기에 흉년까지 들면서 민심은 흉흉해졌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백성을 굶기지 않는 방법을 고심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대안으로 떠오른 게 감자였다. 1492년 콜럼버스의 서인도제도 도착 이후 구대륙 유럽에 신대륙의 신 작물이 들어왔다. 콩, 감자, 옥수수….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짧은 시간 안에 대량 수확이 가능한 작물이다. 구황(救荒)작물로 불리는 이유다. 백성들이 감자를 먹는다면 당장의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왕은 생각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감자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생긴 것도 울퉁불퉁 제멋대로인 데다 성경에 나오지 않은 '악마의 식물'로 알려지면서 온갖 해괴한 소문이 돌아다녔다. 감자를 먹으면 한센병이 걸린다는 괴담도 있었다. 이로 인해 감자는 감히 식탁을 넘보지 못하고 사료 더미 속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왕은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냈다. 인간은 금지된 것일수록 더 욕망한다는 인간 심리를 역이용하기로 한다.
왕은 포고령을 내렸다. '감자는 귀족만 먹어야 한다'. 감자가 하루아침에 아무나 먹을 수 없고 사료로도 쓸 수 없는 작물로 신분이 상승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평민들이 왕실과 귀족 정원에서 자라는 감자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다. 야밤에 몰래 정원에 들어가 감자 서리를 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가축 사료에 지나지 않던 감자는 이렇게 프로이센 가정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고, 18세기 말 전 유럽에 퍼져나가게 된다.

 

▲ 더블린 중심가에 조성된 대기근 기념상 (사진출처=위키피디아/뉴스1)   


■아일랜드 主食 감자 대기근으로 인구 4분의 1가량 아사…미국 이주 계기

 

감자는 영국과 이웃한 아일랜드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키워드다. 아일랜드 농부들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감자 농사를 지었다.


동일한 시간 내에 수확량을 늘리려면 단일품종을 심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단일품종 재배는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1847년 감자 마름병이 돌아 감자밭이 썩어 나갔다.
감자대기근(Great Famine)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배를 주렸다. 아일랜드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굶주림에 쓰러졌다.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수많은 아일랜드사람이 눈물을 훔치며 대서양을 건넜다. '아이리시 엑소더스'(Irish Exodus), '아이리시 디아스포라'(Irish Diaspora).
아일랜드는 수도 더블린 중심가에 그때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대기근 기념상을 설치해 놓았다. 조형물을 보면 그때의 비극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미국 35대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1917~1963)의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가 모두 1868년 '아이리시 엑소더스'의 행렬에 올라탄 사람들이다. 감자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케네디 가문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이리시는 오랜 세월 앵글로색슨이 주류를 이룬 미국에서 차별을 받았다. 같은 영어를 사용했지만 아이리시는 가톨릭이고, 앵글로색슨은 프로테스탄트다.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아이리시와 앵글로색슨의 케케묵은 민족 감정이 대사로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 대통령 시절의 존 F 케네디 (사진출처=Jacques Lowe/뉴스1)  


케네디 가문은 미국의 주류인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서 인정받으려 혼신을 다했다.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고, 이것을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시프 케네디가 1938년 주영대사로 임명된 것은 미국 아이리시들에게는 대사건이었다. 영국인에 핍박받던 아이리시가 영국주재 미국 대사로 부임하다니! 조지프의 자녀들은 대사보다 더 큰 꿈을 품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왜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나. 먹는 입·가족의 행복은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얘기를 하고 웃고 떠드는 데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고향을 등진 아일랜드 출신들에게는 '눈물 젖은 감자'가 될 것이다.


감자밖에 먹을 게 없어 목이 메면서도 감자를 먹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일랜드 농부들. 그런 아일랜드 농가에서는 식탁의 즐거움이란 없다. 그들에게 식사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행위일 뿐이다.


핍진한 아일랜드 농부의 식탁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그림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1885년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물론 고흐가 아일랜드 농부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은 아니다.


북미 대도시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는 매년 3월17일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가 열린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수호성인 패트릭을 기리는 아이리시 최대의 축제다.


이날이 되면 도시는 온통 녹색 물결이다. 런던, 뉴욕, 시카고, 토론토, 몬트리올,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느 도시에서 열리든 퍼레이드에는 '감자'가 등장한다. 나는 토론토 한복판에서 이 퍼레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경험이 있다.


벨기에 홍합탕에 바삭한 감자튀김이 생각난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