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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세상을 바꾼 책과 강연
기사입력: 2020/08/06 [18:58]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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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리버여행기' 완역본 표지   

 

뛰어난 업적 남긴 50여 명의 천재 학창시절 공통점 '독서'
프로이트, 우연히 들은 강연…법학에서 진로 바꾼 계기돼

 

지난 5월 말 '한옥의 장인'으로 불렸던 전 한옥문화원장 신영훈(1935~2020) 선생이 타계했다. 향년 85세. 건축사가, 대목수로도 불린 그는 문화재 전문위원을 장장 37년간 지냈다.


문화재나 한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의 명성을 익히 안다. 나는 고인을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저술과 손길이 밴 작품을 통해 한옥에 쏟아온 목수 신영훈의 정신세계를 헤아려보곤 했다. 석굴암, 화엄사 각황전, 쌍봉사 대웅전, 송광사 대웅보전, 진주성, 숭례문 중수(重修) 공사, 하비브 하우스…. 그가 보수·중수 공사에 참여했거나 신축한 건축물이다.


서울 정동길에 있는 미국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는 1970년대 고인이 지은 한옥 건축물이다. 이런 인연으로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그의 별세에 특별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부음 기사를 읽으며 그가 1935년 개성에서 생을 받았고 아호가 목수(木壽)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대목수의 아호가 목수였구나! 그의 부고 기사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다음 문장이었다.


'중앙고 3학년 시절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 문화재의 길로 들어섰다'
고교 3학년이면 1954년쯤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이 전쟁의 폐허 위에서 허덕거릴 때다. 서른여덟의 미술사학자는 중앙고 강당에서 고등학생들 앞에 섰다.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10년간 지낸 인물로 '한국 미술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라는 명저를 남겼다.


최순우는 한국미(美)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명문(名文)으로 남긴 인물이다. 우리가 지금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를 읽고, 성북구에 있는 그가 살던 옛집을 탐방하는 이유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법대 지망생의 진로를 바꾼 강연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20세기 사상의 용광로로 평가된다. 그 중심에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있다. 인간 무의식의 발견! 세상은 프로이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프로이트는 대학 진학을 앞둔, 김나지움 졸업반 때 우연히 들은 강연에 감명을 받아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프로이트가 그 강연을 듣지 않고 자신이 처음 생각한 대로, 부모가 원하고 교사가 가라는 길로 갔으면 단언컨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빈'에서부터 '도쿄'까지 연구한 49명의 천재 중 학창 시절 학교 공부를 잘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히려 그들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교사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과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것은 트랙이 다르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그들의 학창 시절 공통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독서였다. 그들은 지루하고 억압적인 학교생활을 견디는 탈출구를 책 속에서 찾았다.


이런 가운데 프로이트는 거의 예외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중·고등학교 과정인 김나지움 7년 동안 프로이트는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그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는 '나의 이력서'에서 김나지움 시절의 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중에 유명한 정치가가 된, 나보다 나이가 많은 같은 학교 친구의 영향을 받아 그와 같이 법을 공부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희망을 품었었다" 그는 빈 대학 법학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김나지움 졸업반이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빈 의과대학 교수인 칼 브륄(1820~1899)의 특강을 듣게 된다. 외과 의사이며 해부학자인 브륄은 동물해부의 권위자였다. 당시 브륄은 빈에서 무료강연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프로이트가 이 강연을 들었던 것이다.


브륄 교수는 괴테의 '자연에 대하여'라는 글을 길게 인용하며 강연을 했다. 괴테는 '자연에 대하여'(Die Natur)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자연은 아름답고도 풍성한 어머니이며 그 자식인 인류에게 만물의 근원인 자연의 비밀에 대해 탐색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 강연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자연의 비밀을 탐색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것에 근접하는 학문은 무엇일까. 그는 법학을 포기하고 의학을 선택한다.
프로이트가 법학을 공부했다면 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그는 명석했다. 그러나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브륄 교수의 특강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또한 이것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사건의 첫 발자국이었다.

 

▲ 조지 오웰   


◇소설가 조지 오웰, 매년 한 번씩 읽은 ‘걸리버 여행기’


'1984'와 '동물농장'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 그는 대영제국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도 총독부 아편국 공무원. 그가 한 살 때 어머니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왔다. 교육 문제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조지 오웰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옥스퍼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대학 같은 명문대학에 갈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등학교인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열아홉 살 나이에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버마(현 미얀마)에서 식민지 경찰 생활을 했다.
5년간의 제국주의 경찰 생활을 끝내고 런던으로 올라와 스물네 살부터 독학으로 글을 썼다. 밑바닥 생활을 하며 습작을 거듭해 마침내 소설가가 된다.


소설가 조지 오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 한 권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걸리버 여행기'다.
여덟 살 생일 때 어머니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 '걸리버 여행기'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처음으로 기억해낸 책이 '걸리버 여행기'라고 말했다.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신랄한 정치풍자 소설이 소년의 가슴에 소용돌이를 남겼다. 소인국 왕국에 난 불을 오줌으로 진화하는 장면, 두 당파가 '구두 뒤축 높이'를 놓고 사생결단식 정쟁을 벌이는 장면…. 그는 열한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비교적 일찍 작가의 꿈을 품은 경우다.


중등학교 전 단계인 예비학교 시절 독서클럽에 들어가 친구들과 독서를 매개로 어울리면서 독서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책 속에서 그는 여러 작가를 만났다. 그러나 그가 무명일 때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머리맡의 자리끼처럼 매년 한번씩 읽곤 하던 소설은 '걸리버 여행기'다.


이 소설은 정치풍자라는 측면에서 '동물농장'의 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 관료로는 드물게 인문 교양에 상당한 내공을 축적한 사람이다.
그는 대학 총장 시절이나 부총리 시절 인터뷰나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언론인을 만나면 으레 '걸리버 여행기'를 선물하곤 했다.

 

▲ 오스트리아 왕립 김나지움 시절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학창 시절 불우한환경 독서에서 비상구 찾아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학창 시절도 독서라는 관점에서도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카프카의 청소년기는 불우했다.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집안에서는 그런 아들의 지적 호기심을 뒷받침해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돈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말 같지 않은 이유로 아들을 억압했고 상처를 주곤 했다. 유대계 체코사람인 아버지는 아들이 오스트리아 지배계층으로 출세하길 희망해 독일어 김나지움에 보냈다.


김나지움의 상황도 다를 바 없었다. 수도원과 소년원을 섞어놓은 것 같은 김나지움에서는 걸핏하면 교사들은 학생들을 때렸다. 그 김나지움이 프라하 구시가광장의 골즈 킨스키 궁전에 있었다.
그는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하게 소외를 당했다. 그렇지만 천성이 심약한 그는 억압적인 아버지와 학교에 감히 저항하거나 반항할 수 없었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누구나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는 거역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독서에서 비상구를 찾았다.


괴테, 다윈, 니체, 스피노자, 톨스토이를 읽으며 현실의 억압에서 도피했다. 이중에서 특히 그를 사로잡은 작가는 괴테였다. 현실 세계와의 불일치가 심화될수록 그는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후 그는 대학에 가서나,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쓸 때 괴테를 의식하며 살았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대면 강의가 사실상 올스톱된 상황에서 온라인 강의가 나름대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팬데믹(대유행)으로 '집콕'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서가의 책을 빼 들게 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류 최고의 스승은 책이다. 지금부터 이삼십년이 흐르고 나면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로 집콕하면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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