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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네차예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 '악령' 실존인물 '네차예프 사건' 소설 집필
기사입력: 2020/06/04 [18:36]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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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 표지   



세계의 시인·작가·사상가들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를 경배하는 것은 그의 후반기 작품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때문이다. 내가 경외하는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에 대해 이런 찬사를 남겼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 그는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 가운데 하나다"


도스토옙스키가 신문에 연재한 '악령'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은 1873년. '악령'은 알려진 대로 실제 있었던 '네차예프 사건'을 소설로 쓴 것이다. 실존 인물 네차예프를 다시 들여다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용식 문화일보 주필의 칼럼을 읽고 나서다.


이 주필은 '조국·윤미향과 양아치즘'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적시했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는 '네차예프의 교리문답'처럼 목적 실현을 위해서는 인륜과 도덕을 버려야 한다는 흐름도 있었다", "초대형 현수막과 야간 촛불 횃불행진은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나치 정권 시절 최악의 범죄자 중 한 사람)의 발명품이다", "파시즘과 볼셰비즘 악성(惡性)에 사욕과 야비함까지 보탠 '양아치즘'이 보인다"


이 주필은 윤미향 당선인의 후원금 횡령 의혹을 이야기하면서 왜 '네차예프 교리문답'과 '파시즘과 볼셰비즘'을 언급했을까. '네차예프 교리문답'의 존재 사실을 아는 사람은 좌익운동권 경험이 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은 교리문답은 커녕 '네차예프'라는 고유명사를 대부분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윤미향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데 150여 년 전 네차예프 사건과, 또 103년 볼셰비키 혁명과 도대체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 세르게이 네차예프   

 

◇네차예프(1847~1882). 러시아 지하 혁명조직의 리더


1869년 11월 21일, 모스크바 농과대학생 이반 이바노프가 농과대학 숲에서 '처참하게' 살해돼 얼어붙은 연못에 버려졌다.


'처참하게'라는 표현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면 이바노프는 동료들에게 구타를 당한 뒤에 다시 교살(絞殺)됐고, 이 시신을 총으로 쏜 뒤 얼어붙은 연못에 구멍을 뚫고 시체를 유기했다.


이바노프는 5인조 지하 혁명조직의 멤버였다. 조직의 리더가 스물두살 세르게이 네차예프(1847~1882). 하지만 이바노프는 시간이 흐르면서 혁명에의 열의가 식어간다. 조직의 모임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조직을 탈퇴하겠다는 뜻을 동료들에게 말한다.


그러자 동료들은 조직이 탄로 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바노프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바노프에 대한 살인을 사주한 이가 네차예프였다. 다른 조직원들은 체포됐고, 살인을 교사한 네차예프는 스위스 제네바로 도주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스위스 경찰은 취리히에서 네차예프를 체포해 러시아에 인도했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인륜도 저버린다’


네차예프는 어떤 인물인가. 스무 살 무렵, 네차예프는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반체제 좌익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된다. 극적으로 탈옥에 성공한 네차예프는 중립국인 스위스로 간다. 당시 스위스에는 러시아 좌익혁명가들이 대거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네차예프는 스위스에서 아나키스트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1814~1876)을 만난다. 바쿠닌은 드레스덴 유혈봉기를 비롯한 유럽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폭동의 배후 인물로 현상 수배 중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을 위해서라면 테러를 포함한 그 무엇도 용인된다고 생각했다.

 

▲ 미하일 바쿠닌   


◇네차예프, 조직원들에게 호된 훈련 통해 맹목적인 복종 강요


네차예프는 바쿠닌의 혁명 사상에 감화됐다. 그는 광신적 혁명주의자가 돼 비밀리에 러시아로 돌아왔다. 모스크바 농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혁명결사를 조직한다.


혁명 대의를 위해서라면 육친의 정(情)까지도 가차 없이 버린다는 철의 규율을 만들었다. 네차예프는 조직원들에게 호된 훈련을 통해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네차예프는 스스로를 농민 혁명가 푸가초프라고 여겼고,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살인을 포함한 인륜을 저버리는 모든 행위도 정당화된다고 믿었다.


러시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네차예프는 결국 1873년 법정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요새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복역 10년째인 1882년 옥사했다.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 네바강 건너 페테르부르크 중심가가 보인다. /조성관 작가   

 

◇도스토옙스키, 1869년 이바노프 피살된 사건 각색 구성으로 소설 ‘악령’ 집필


다시 도스토옙스키로 돌아가자. 1869년 이바노프 피살 사건이 알려지자 러시아 사회는 충격에 빠진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바노프의 친구인 대학생 처남으로부터 이 사건의 전모를 소상하게 전해 들었다.


그는 주변을 취재하면서 네차예프 사건의 본질에 몰두했다. 허무주의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소설로 쓰기로 한다. 무대와 등장인물을 바꾸고 몇몇 조연들을 새로 창조해 소설을 써나갔다. 젊은 날 한때 좌익급진주의에 솔깃했던 적이 있던 그였다.


'악령'에서 잔혹한 혁명가 네차예프는 표트로 베르호벤스키로, 대학생 이바노프는 샤토프로 각각 나온다. '악령'을 펼치면 주요 인물 소개가 나온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스체판 베르호벤스키 선생의 외아들. 비밀 결사의 우두머리로 파괴의 화신이자 광신적 혁명사상 실현에 광분하며 스타브로긴에게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역할을 한다 △샤토프:소작인의 아들. 메시아 사상의 사도로 자기 신념을 다하다 표트르의 마수에 쓰러진다.


소설은 성경 '누가복음 제8장 32절'부터 시작한다.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악령)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악령)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에서 무신론 혁명사상을 그 '악령'으로 보고, 그것에 이끌린 사람들의 파멸을 묘사했다.

 

◇레닌과 스탈린, 네차예프 숭배


페테르부르크에는 바다 같은 강이 거친 물살을 일으킨다. 네바강이다. 그 네바강에 섬이 떠 있다. 이 섬이 페테르부르크의 시원(始原)이다. 표트르 대제는 이곳에 페트로파블롭스크 사원을 지었다. 다시 이 사원 둘레에 요새가 건설되면서 이곳은 페트로파블롭프스크 요새감옥이 된다.


제정 러시아 시절 반체제인사와 좌익혁명가들이 주로 이 요새감옥에 수감됐다. 1870년부터 1917년 소비에트 정부 수립 때까지는 바스티옹 감옥으로 불렸다.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좌익활동을 하다 체포 수감된 1849년에는 이곳이 페트로파블롭스크 감옥으로 불리던 때다. 네차예프가 살인교사죄로 2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것은 바스티옹 감옥 시절이다.


물론 현재는 감옥으로 사용되지 않고 감옥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요새는 네바강 위에 떠있지만 지금은 다리로 연결된다.


감옥박물관 입장료는 150루블. 제정러시아 시절 인민의의지당, 사회민주주의당, 국제사회혁명당, 사회주의혁명 테러조직당 당원들이 주로 여기에 갇혔다. 네차예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 바스티옹 감옥의 복도 /조성관 작가    


◇도스토옙스키, 20대 후반 좌익혁명사상에서 동방정교 영향받아 사상적 전환


도스토옙스키는 20대 후반에 좌익혁명사상에 솔깃했다가 시베리아 유형(流刑)을 다녀온 후 다른 사람이 됐다. 동방정교의 영향을 받아 일대 사상적 전환이 이뤄진 결과다. 시차(時差)를 두고 같은 감옥에 수감됐던 작가는 네차예프에게서 악령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도 볼셰비키들은 네차예프를 숭배했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과 스탈린이 네차예프에 영향을 받았다.


도서출판 교양인에서 번역·출간된 '혁명가 네차예프 교리문답'에 보면 네차예프를 이렇게 소개한다.
"혁명을 직업으로 삼고, 삶의 목표로 삼을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면, 네차예프는 혁명가의 표상이었다. 동시에 그는 음모가였고 사기꾼이었고 공갈범이었고 복수의 화신이었으며, 피에 굶주린 범죄자였다. 오로지 혁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극단적 열정, 너무도 강렬해서 뿌리치기 힘든 사악한 마력은 바쿠닌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는 거의 모든 건전한 혁명가들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다. 인간해방이라는 대의를 가슴에 품은 자의 경건한 표정 아래 숨은 어두운 내면이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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