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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6월 보훈의 달이 주는 교훈 ‘자유는 공짜 아니다’
기사입력: 2020/06/01 [12:47]
권영수 마산운수(주) 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 권영수 마산운수(주) 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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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수 마산운수(주) 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

산과 들녘엔 초록의 물결 사이로 이름 모를 야생화 등 예쁜 꽃들이 피어나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을 연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산야(山野)엔 70년 전(1950년 6·25) 북한이 남침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血)로 물들인 것이다. 그 당시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국군과 유엔군 등 십수만 명의 참전국가의 꽃다운 나이의 장병들이 적군과 싸우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쟁을 경험할 나이는 아니지만 어렸을 적에 부모님 또는 집안 어른들께 6·25전쟁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 후 성인의 나이에 접어들고 해마다 6월이 오면 한국 전쟁에 대한 글을 쓰면서 눈물을 적시게 했던 심연옥 선생께서 불렸던 아내의 노래 가사를 적어본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에 길이 옵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내갈 곳도 님의 길이요/ 바람불고 비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옵기에/ 태극기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소/ 싸우시는 님의 뜻은 등불이 되어/ 눈보라고 날리는 차가운 하늘 밤에/ 달과 별을 바라보며 무운장구 비옵니다."


이 노래는 1952년 손목인 선생이 작곡하고 심연옥 선생이 불러 심금(心琴)을 울리게 했던 노래 가사다.


우리나라가 1950(6·25~1953년 7월 17일) 3년 1개월간 6·25전쟁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6개국과 의료·군사물자 5개국 등 모두 21개국의 십수만 명이 파병된 지원군과 우리나라 육·해·공·해병대 등 총 100만 명에 가까운 참전용사들이 적군과 싸워 피를 흘리면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당시 유엔(UN)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더글러스 맥아더(Macarthur.d.s) 원수는 남한의 90% 이상 점령당하게 되자 인천상륙 작전을 할 수 있도록 당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께 간청을 했다. 1950년 9월 15일 미군 제1사단의 병력을 이끌고 인천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맥아더 원수는 미 지상군을 수원 부근에 신속히 투입하여 북한 공산군의 주력부대를 그곳에 배치하고 인천 부근에 제1병기 사단을 상륙시켜 공산군 주력부대를 공격하여 북진하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 영국 (유엔군 16개국) 등 십 수만 명이 파병되어 미군이 3만9천여 명, 영국 연합군 등 1만6천여 명, 국군 등 4만여 명, 약 10만 명이 전사하고 전상자도 십 수만 명이다.


필자가 오래전 미국(LA) 흑인 폭동 당시 비행기에 몸을 실어 미국에 건너갔다. 참혹한 폭동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흑인여성과 남성을 소개받아 위험을 감수하면서 약간의 물품봉사와 인명 구조활동을 해왔다. 폭동사태가 끝나갈 무렵, 워싱턴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둘러봤는데 한국전 기념비에 새겨진 것은 '자유와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가슴이 찡하게 와 닿았다. 우리는 유엔군 등 참전 용사나 그들 후손들에게 평생동안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50여 년 전 월남은 10년간의 긴 전쟁으로 나태해진 국민들은 결국 월맹군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들은 목선을 타고 태평양과 인도양을 떠돌며 추위와 배고픔에 생사(生死)를 넘나들며 다른 나라로 건너갔지만 패망한 나라의 국민들은 이민을 받아주지 않았기에 몇 달간 바다에 표류 된 것이다. 그 후 우리나라 부산으로 건너왔지만 입국이 되지 않아 4부두에 임시 정박하여 수용소와 다름없는 곳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얼마 후 다시 광안리 컨테이너로 수백 명이 옮겨왔다. 이곳에서도 라면이나 빵 한 조각으로 겨우 배를 채우며 목숨을 부지해 간다는 TV를 보고 먹거리 등을 가득 싣고 현장에 달려갔다. 그들을 만나 손짓·발짓으로 의사(意思)소통을 하면서 라면과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나라 잃은 설움에 그들과 부둥켜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쌓여 있어 언제 어느 시 주변국들이 침략해 올지 모르는 일이다. 중국은 북간도와 서간도 일대를 자기네 영토라고 표기를 해둔 지 오래됐다. 또한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까지 영해를 침범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투기로 십수 차례나 영공(領空)을 침공해 왔지만 우리는 별다른 제재조치도 못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틈만 나면 독도(獨島)를 자기네 영토라고 망동을 해오다 4년 전엔 독도를 국정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했다. 뿐만 아니라 독도를 쓰시마(대마도·對馬島)해역 (TsushimalsLand)을 울릉분지라고 표기를 해놓고 있다. 이들 주변국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계속 돼 오고 있다. 이를 볼 때 여·야 정치인들이 협치(協治)하여 힘을 모아 자주국방(自主國防)을 길러나가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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