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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니콜 키드먼과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남편 도움으로 유명한 여류 작가 반열에 올라
기사입력: 2020/05/28 [18:32]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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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 초상화. 언니인 화가 바넷사 벨이 1912년에 그렸다.   



영미권 여배우 중 지적인 배역을 가장 잘 소화하는 사람은 니콜 키드먼이 아닐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집콕'하면서 우연히 '레일웨이 맨'(Railway Man)이라는 호주 영화를 봤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영국 군인 로맥스가 일본군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아내 패트리샤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실화를 다룬 영화다.


책의 원제는 '에릭 로맥스'. 2013년에 나온 이 영화를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다 확인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나는 왜 지금에야 알았을까.


로맥스 역을 콜린 퍼스, 패트리샤 역을 니콜 키드먼이 각각 맡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니콜 키드먼이 참 내면적인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2016년에 나온 영화 '지니어스'(Genius)를 봤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지니어스'에서도 콜린 퍼스와 니콜 키드먼은 부부로 출연했다.


천재적인 편집자가 천재 작가(주드 로 분)를 발굴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가 '지니어스'다. 나의 천재 연구를 눈여겨본 지인이 강력히 추천해 보게 된 영화였다.

 

◇2002년에 ‘버지니아’ 역으로 출연


니콜은 다작(多作)의 영화배우다. 거의 일 년에 1.5편씩 영화를 찍는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더 많이 봤겠지만 다른 영화들은 다 휘발되었고 지적인 배역의 영화들만이 뇌리에 남았다.
그런 영화 계보의 맨 위 칸을 차지하는 작품이 2002년 작 '더 아워스'(The Hours)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니콜이 1967년생이니 서른다섯에 찍은 영화다.


'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에서 니콜은 버지니아 울프 역할을 맡았다. 니콜은 키가 크고 얼굴이 갸름한 버지니아 울프를 외모에서부터 정말 많이 닮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20세기 전반을 산 영국 여성 중 가장 책을 많이 읽었고, 가장 복잡한 정신세계를 가졌던 버지니아의 역(役)을 니콜은 무난하게 소화했다.


나는 강연에서 종종 버지니아 울프(1882~1941)를 이야기한다. 지난해 가을 서울여대 특강에서도 '버지니아 울프'를 강연했다.
평범한 한국인이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된 것은 시인 박인환 덕분이다. '목마와 숙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노래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를 이야기할 때마다 청중의 반응에서 느끼곤 한다.
나의 목소리와 그들의 시선이 부딪치는 불연속선에서 미세한 슬픔의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 정원에서 본 몽크스 하우스 /조성관 작가   


버지니아의 59년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고, 또 가장 가슴 저린 공간은 영국 남부 서섹스 주 로드맬의 몽크스 하우스다. 물론 런던에도 그녀의 흔적이 여러 곳 남아 있다.


런던 토박이였던 버지니아는 여성은 대학에 보내지 않던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로 인해 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아들들은 대학에 보냈다) 그녀는 저명한 학자였던 아버지 서재의 책 속에 파묻혀 10대를 보냈다.
버지니아 인생의 전기는 1904년이었다. 지적이면서 권위적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두 딸(버지니아, 바넷사)은 아버지가 살던 집을 벗어나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 간다. 이때 나이 스물둘.


우연히 이 동네에 살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지적인 그룹과 어울리며 자유롭게 어울리며 글을 쓴다. 빅토리아 시대의 인습과 관습을 타파하는 모든 자유가 허용되었다. 이들을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부른다.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는 버지니아는 여기저기 신문에 기고한다. 1905년 처음으로 '타임즈'에 글이 실린다.


버지니아는 스물아홉이 될 때까지 남자를 사귀어 본 일이 없었다. 고질적인 신경쇠약증으로 인해 내성적 성격이 되었고, 남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오빠의 친구 레너드 울프였다.


공무원이었던 레너드는 친구 여동생이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너드는 버지니아에게 청혼한다. 버지니아는 결혼 조건을 내건다. 성관계는 'No'(없음), 공무원을 그만두고 글을 쓰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느냐. 버지니아를 위해 인생을 걸기로 한 레너드는 이를 받아들인다.

 

▲ 정원에 있는 오두막. 이곳에서 버지니아는 남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조성관 작가   


◇마지막 편지 ‘사랑하는 당신께’


1912년 두 사람은 결혼한다. 두 사람은 최고의 지적 동반자였다. 버지니아는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신경쇠약증에서 벗어나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1916년 첫 소설 '출항'이 나온다. 영국 문단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917년 남편은 집 지하실에 출판사를 차려, 아내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출간한다. 소설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버지니아는 가장 유명한 여류 작가로 올라선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걸리는 서섹스주 로드멜에 널따란 정원이 딸린 집을 샀다.


이 집을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라고 이름 짓고 번잡한 런던 생활이 싫증 나면 이곳으로 내려와 글을 썼다. 신문에서는 최고의 원고료를 지급했고, 소설은 나오는 대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강연 요청도 쇄도했다. 1920~1930년대 버지니아는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엘리엇, 케인즈를 비롯한 당대의 작가와 예술가들이 이 집을 방문하곤 했다.


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은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려 지속해서 본토를 공습한다. 이것을 블리츠(Blitz)라고 한다. 런던 곳곳이 폭격을 받았다. 1940년 10월 16일 버지니아가 살던 집도 폭격을 받아 폭삭 무너졌다.
이 모습을 눈으로 본 버지니아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진다. 자기 존재의 기반이 허물어져 버렸다. 정서적 안전판이 깨어지자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신경쇠약증이 재발했다.

 

▲ 몽크스하우스 1층의 식당 /조성관 작가    


로드멜로 돌아온 버지니아는 신경쇠약증에 괴로워한다. 잠을 자지 못했고 음식을 입에 대는둥 마는둥 했다. 몸이 명태처럼 빼빼 말라갔다.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갔다.


1941년 3월 중순, 로드맬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버지니아의 증세는 더 나빠졌다. 남편은 1941년 3월 27일 아내를 인근 브라이튼의 병원으로 데려갔다. 주치의가 말했다.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글을 써서는 안 됩니다"


3월 28일 금요일 아침이었다. 버지니아는 집을 나와 정원 한 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에 들어갔다. 오전 11시쯤 그녀는 남편에게 산책하고 점심을 먹을 때쯤 돌아오겠다면서 집을 나섰다.


점심때가 되자 남편은 2층에 있는 아내의 집필실로 갔다. 아내의 책상 위에 '레너드에게'라고 적힌 편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남편은 무심코 편지를 읽다가 부르르 떨면서 정원으로 내려가 아내를 찾았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이 청혼했을 때 저는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고통스러운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며 제가 작품을 쓰는 동안 당신은 출판사를 차려 묵묵히 제 후원자 노릇을 해왔지요. 제 생애의 불행은 여섯 살 때부터 시작됩니다. 큰 의붓오빠가 어머니 없는 틈을 타 저한테 몹쓸 짓을 하는 것이었어요…그 시절부터 저는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성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지요…"

 

▲ 밀물의 우즈강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우즈강을 향해 걸어가는 걸 봤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즈강을 샅샅이 뒤졌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버지니아가 사용한 지팡이만이 강물의 소용돌이에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20일 뒤인 4월 18일 우즈강의 물이 썰물로 바뀌었을 때 시신이 발견되었다. 오버코트 양 호주머니에는 돌멩이들이 가득했다.


로드맬의 몽크스 하우스는 매년 봄, 여름, 가을 버지니아를 기억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순례의 마지막 코스는 우즈강이다. 순례자들은 우즈강변에 앉아 한 참을 강바람을 맞는다.
나는 '버지니아 강연'을 할 때마다 청중에게 묻는다. "버지니아는 자살이 맞나요? 사건기자는 자살이라고 씁니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인가요?"

 

▲ 우즈강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   

 

◇후기


지난 주말 신문에 눈길을 끄는 신간이 소개되었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The Eggshell Skull Rule) 무슨 책 제목이 이런가! 계란껍질만큼 얇은 두개골을 가진 사람의 머리를 한 대 쳤을 뿐인데 사망했다면, 가해자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의 원인 제공자가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영미법상 법률 원칙을 의미한다.


저자는 재판연구원 브리 리. 그녀는 초등학생 때 오빠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저자는 "어린아이를 성추행하는 것은 그 아이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격과 신체를 짓밟는 짓"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옥으로 만든 성추행범을 법정에 세우기까지의 과정의 기록이다.


부산시장이 집무실에서 저지른 성추행으로 시장에서 물러났다. 부산사람들은 지금 침울하다. 더 참담한 사실은, 여성 인권 운운해온 여성단체들의 기이한 침묵이다. 약자에 가해진 폭력에 눈을 감는 것은 문명에 대한 도전이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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