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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환아정(換鵝亭) 70년만에 재현 복원된다
기사입력: 2020/05/12 [18:25]
신영웅 기자 신영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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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아정의 역사를 간직한 산청읍 전경   



'선비의 고장' 알리는 상징적 누각
1395년 첫 건립…1950년 화재로 소실
현판 글씨 한석봉·기문 송시열이 써
경호강 어우러진 풍광 그림 보물 지정

 

'선비의 고장' 산청군의 상징적 누각인 산청읍 환아정(換鵝亭)이 70년만에 재현 복원된다. 산청군에 따르면 1395년에 지어진 뒤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다 일제시대인 1912년 5월 28일 산청 공립보통학교가 산청의 상징건물인 환아정에서 개교를 했고 개교 당시 모습이 그림엽서로 제작돼 지금껏 전해지고 있다. 이 그림엽서에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산청교육의 산실 환아정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현재의 산청초등학교 현관 자리에 세워졌던 환아정은 아쉽게도 1950년대에 원인불명의 화재로 소실돼, 환아정의 재현 복원은 산청군의 숙원 사업이었다.


앞으로 환아정이 복원된다면 산청의 상징물이 될 것이며, 산청이 산청인 이유를 후대인들에게 알려줄 좋은 유산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청의 명소로 길이 남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산청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하나로 시행하는 이번 사업은 올해 3월 실시설계를 시작으로 2021년 말 준공을 목표로 진행된다. 산청군은 산청초등학교의 역사자료와 옛 그림 등 관련자료를 바탕으로 소실된 환아정의 복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 1912년 산청공립보통학교 개교당시 환아정의 모습 (자료출처-산청초등학교)   


◇산청군의 옛이름 산음(山陰)에서 유래된 환아정


산청(山淸)은 이름 그대로 산수가 아름다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으로 남명 선생 등 선비들의 정신과 함께 선비들의 행적 등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다.


이 중 선비들의 수양(修養)과 유람 장소로 널리 애용되면서 명유(名儒, 이름난 선비)들이 찾아 시를 남기기도 했던 환아정은 1395년 당시 산청 현감인 심린이 산음(山陰)현(산청군의 옛 지명이름) 객사의 후원으로 지은 정자다. 당시 자료를 보면 환아정의 현판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 한석봉의 글씨를 달았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환아정과 함께 왜구에 의해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608년 권순에 의해 복원됐는데 이때 우암 송시열이 기문을 적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송시열은 기문을 통해 "나는 아직 중국 회계의 산음은 가보지 못했는데, 그 산수의 빼어남이 어디가 나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름을 가지고 사실을 구한다면 아마 서로 백중세를 이룰 것 같다"며 환아정과 경호강의 풍경을 예찬했다.

 

▲ 산청 환아정의 산청공립보통학교 당시 자료사진 (출처-산청초등학교)   


1950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약 600년간 산청의 상징 건물로 선비고장 산청의 맥을 이어온 유서깊은 곳인 '환아정' 명칭은 산청현감인 심린(沈潾)이 창건한 후 당시 학문이 뛰어난 권반(權攀)이 정자명을 지었다. 바로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로부터 산음(山陰)이라고 불렸던 산청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산음의 빼어난 경치에 비유해 고을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환아정'이라는 산청의 정자 이름도 중국 진(晉)나라 사람으로 당대 대표 문학가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던 왕희지(王羲之) 일화에서 유래된다.


왕희지가 회계(會稽) 내사(內史)를 지낸 적이 있는데, 부임때 산음(山陰)의 한 도사가 그의 글씨를 흠모해 많은 예물을 보내 도덕경인 '황정경(黃庭經)'을 써주길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후 이 도사는 왕희지가 흰 거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손수 이 거위를 그에게 보냈다. 왕희지가 흰 거위를 보고 매우 즐거워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사는 즉시 글씨를 쓸 좋은 비단을 준비했다. 이번엔 왕희지도 거절치 않고 즉석에서 '황정경'을 써 주었다. '흰 거위와 글씨를 바꾸다'의 뜻인 '백아환자(白鵝換字)'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회자돼 왔다.


옛사람들은 중국의 산음을 이야기할 때면 '왕희지와 거위' 이야기를 빼놓는 법이 없었다. 우리나라 '산음'에도 '환아(鵝換)'의 고사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명만 산음을 따르면서, 이에 따르는 '정신적 자산'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마 '반쪽 산음'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결국 '산음(山陰)'이라는 산청의 옛 지명은 수려한 경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고 환아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름 지어졌다.


현재 가장 최근의 것으로 확인되는 환아정의 모습은 지난 1912년 산청공립보통학교 개교 기념엽서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한국주거환경학회가 지난 2014년 작성한 '산청 환아정 복원을 위한 문헌사적 고찰' 논문에 따르면 환아정은 규모나 건축특징적인 면에서 정(亭)과 루(樓) 중 큰 규모의 건축물을 일컫는 루로 명칭돼야 한다.


옛 문헌에서 보면 환아정이 있었던 곳은 경호강변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산청초등학교 본관 건물이다. 산청초교 근처에는 현재 군청과 경찰서가 있는데 이곳은 과거 관아가 있었던 자리로 파악된다. 환아정에 대한 기록은 옛 지리서와 지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여지도서(1759), 경상도읍지(1832), 영남읍지(1871)에서 보면 환아정은 '객사의 서쪽에 있으며 강물을 굽어본다'고 쓰여 있다.

 

▲ 산청 환아정 망와 자료사진(출처-산청초등학교)   


◇영남 3대 누각으로 손꼽혔던 환아정


산청 환아정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다. 특히 지난 2017년 보물 제1929호로 지정된 '김윤겸(1711~1775) 필 영남기행화첩'을 보면 경호강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환아정의 모습이 소개돼 있는데 이 그림을 통해 규모와 형태를 비교적 자세히 확인 할 수 있다.

 

▲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에 실린 산청 환아정 (자료출처-문화재청)   


김윤겸은 문인화가인 김창업의 서자로, 1770년 진주지역에서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察訪)으로 일할 때 작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김윤겸은 50대의 어느 여름에 다녀온 영남지역의 명승 14곳을 화폭에 담았다. '영남기행화첩'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또 풍산 김씨 집안에서 세전돼 온 화첩인 '풍산김씨세전화첩'에서도 환아정의 옛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화첩에는 '환아정양노회도'라는 그림이 실려 있는데 이는 당시 지역의 70세 이상 노인들을 초대해 양로연을 베푸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 풍산김씨 세전서화첩에 실린 환아정 양노회도 (자료출처-세전서화첩)   


이 그림은 후대에 복각되긴 했지만 실사를 바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16세기 당시의 환아정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그림에 나오는 환아정은 1950년 소실되기 직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일자형의 루(樓)형식 건물로 그려져 있다.


산청군 관계자는 "환아정이 재현되면 산청군이 가진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산청의 상징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과 함께 환아정 재현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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