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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굴의 투지로 조국의 하늘을 수호한 이재국 소령
기사입력: 2020/03/29 [12:52]
강자연 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강자연 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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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자연 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국가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국가를 위해 앞장서 왔다. 일제강점기 시대, 6·25전쟁, 국민의 주권이 위협받았던 시대… 이처럼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와 같이 힘들었던 시기들마다 나라를 지켜낸 것은 바로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렇게 예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해 왔는데, 3월의 끝자락인 오늘은 6·25전쟁이라는 국가의 큰 위기가 있었을 때 누구 보다 앞장서서 자신을 희생한 이재국 소령을 기억해보고자 한다.


국가보훈처에서는 6·25전쟁 영웅 중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매년 열두 명씩 선정하고 있는데 이분들 중 3월의 전쟁영웅이 바로 이재국 소령이다. 이재국 소령은 1952년 8월 1일 조종간부 1기생으로 임관 후 강릉기지에 배속되어 북한지역에 있는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1952년 10월 한 달 동안에는 거의 매일 전투 비행에 나섰으며, 7개월이라는 짧은 작전 참여 기간 동안 총 99회 출격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 소령은 특히 고성 일대의 지상군 전투지역에 대한 근접항공지원작전에 참가하여 적을 무력화시키고 아군의 사기를 고양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 이재국 소령 


이재국 소령은 1953년 3월 고성 남방의 적진을 공격하던 중 적의 대공포화에 피탄되어 기체가 화염에 쌓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과감하게 조종하여 기적적으로 생환하였지만 이 공격으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이후 불굴의 투지로 재기하여 1955년에 다시 조종간을 잡았으나 안타깝게도 1955년 3월 T-33제트기 도입을 위한 임무 수행 중 순직했다. 정부에서는 6·25전쟁 중 빛나는 공적을 기려 1953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잠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 가족 중 비행기 조종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의 남편이나 아들 혹은 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상황을 떠올려보고 그들이 탄 비행기가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을 향해 날아간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데, 7개월 동안 99회의 출격이라니…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신 이재국 소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잔인한 3월이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도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향했던 의료진분들을 보면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그런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고 싶기에 나 역시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 및 개인위생 관리를 실천하려 한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들의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위해 한마음이 되어 힘을 합한다면 곧 코로나가 종식된 진짜 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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