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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깊은 허만길 시 ‘진주 비봉산’ 가곡으로 재탄생
학창시절 인생이상 다짐하며 정든 비봉산 절절한 그리움
기사입력: 2020/03/10 [14:47]
유용식 기자 유용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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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허만길 시인(문학박사. 소설가. 전 교육부 국어과 편수관)의 시 ‘진주 비봉산’이 가곡으로 제작돼 깊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허만길 시인이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이 특별해 더욱 가슴 뭉클하게 한다. 시 ‘진주 비봉산’은 전북대학교 이종록 명예교수(서울대학교 작곡과 졸업. 한국작곡가회 상임고문)에 의해 가곡으로 작곡돼 소프라노 최윤정 서울대학교 성악과 강사의 노래로 지난 2월 ‘작곡가 이종록 가곡 제39집’ 음반에 수록됐다. 악보는 이종록 작곡집 ‘나 억새로 태어나도 좋으리’에 실렸으며, 국립합창단 단원 바리톤 유지훈 씨 노래로 음원이 제작됐다.


비봉산은 진주의 도심 북쪽에서 큰 날개를 펼친 듯이 시내를 에워싸고 있으며, 비봉산 남쪽에는 남강이 흐르고 있다.


허만길 시인은 의령군 칠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진주중학교(1958년)·진주사범학교(1961년 초등학교 교원 양성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비봉산 아래서 셋방을 옮겨 가며 살았다.

 

아버지와 진주봉래초등학교 구내 이발소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비가 내리면 밤새도록 하늘이 보이는 구멍 뚫린 양철 지붕을 쳐다보며 물을 받아내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극찬을 받으며 고교 입학 모의고사 1등 학업 장려상, 학업 우등상, 초대 도서위원장 공로상, 3년 개근상을 받은 허만길 시인은 진주사범학교 3학년(1960년) 때에는 학생위원회 위원장(학도호국단 운영위원장)으로서 진주시의 4·19혁명에 앞장서기도 했다.

 

동트기 전 의곡사 뒷산 봉우리에 올라 봉래초등학교 뒷산 봉우리까지 능선을 달리며 청보리와 꽃과 멀리 남강 위의 아침안개를 보고서는 물지게로 이발소에서 쓸 물을 길러 날랐다.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지냈는지라 의곡사 입구 정자와 비봉산 중턱에서 책을 읽고 비봉산 곳곳을 누비며 인생 이상을 다짐하고 진리를 추구하곤 했다.


 비봉산에 대한 이러한 사연을 안고 있는 허만길 시인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인생 이상을 다짐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정든 비봉산을 절절히 그리워하는 시 ‘진주 비봉산’을 ‘한국현대시’ 21호 2019년 상반기호(편집 한국현대시인협회. 발행 시문학사)에 발표했는데, 그것이 가곡으로 제작된 것이다.


소프라노 최윤정 씨와 바리톤 유지훈 씨의 ‘진주 비봉산’ 노래는 인터넷 유튜브(YouTube)에서 ‘허만길 진주 비봉산’ 혹은 ‘가곡 진주 비봉산’이라고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허만길 시인은 수필집 ‘열네 살 푸른 가슴’에서 진주중학교 학창시절을 회상하고 있으며,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에서는 진주사범학교 학창시절과 첫 교육 활동을 회상하고 있다. 허만길 시인은 ‘우리 자연 우리 환경’, ‘우정의 자리’, ‘백두산 바라보며’, ‘악성 우륵 찬가’, ‘여의도 꽃길’, ‘한강샛강다리’, ‘의령 아리랑’, ‘자굴산’, ‘해운대 달밤’, ‘방송통신고등학교 교가’ 등 많은 가곡을 작사했다.

 

진주 비봉산                  허만길

 

푸른 맘 주고받던
산마루 느티나무
산등성이 굽이 따라
한들한들 청보리
맑은 미소 고운 꽃잎
꿈이 뛰놀았네.
떠오르는 아침 안개
남강 위 춤을 추고
머나 먼 인생 이상
다짐하며 정든 그대
그리운 비봉산 진주 비봉산
 
달 밝은 산허리
붉게 익던 딸기밭
밝은 웃음 비탈 마을
정답던 그 이웃
비봉루 서성이며
진리를 헤매었네.
산자락 의곡사
승병 넋이 거룩하고
머나 먼 인생 이상
다짐하며 정든 그대
그리운 비봉산 진주 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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