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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로댕의 '키스'를 찬미하라
대리석은 차가웠지만 남녀가 뒤엉킨 키스에서는 아름다운 열기 뿜어져
기사입력: 2019/12/01 [17:32]
유용식 기자 유용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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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귀스트 로댕    

 


지하철을 타려 버스에서 내렸다. 두 번째 발짝을 내딛는데, 버스정류장 광고판이 확 다가왔다. 벌거벗은 남자가 화장실에서 용을 쓴다. 한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든 채 번민에 사로잡혀 있다. '아침마다 죽을똥 살똥' 도저히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하는 사람'을 변기에 앉히고 화장지를 들려주니 영락없이 로댕이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을 모티브로 만든 것 같다. 로댕이 마치 화장실에서 괴로워하는 남자에서 소재를 얻었지만, 제목은 점잖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붙인 듯하다. 기발한 착상이고 놀라운 상상력이다. 이 광고는 대장 운동을 돕는 효소 광고다.


우리나라 장년층은 미술시간에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을 배웠다. 로댕을 통해 조각의 광대한 세계에 한 발 내디뎠다. 조각하면 로댕이고, 로댕이 곧 서양의 조각을 대표했다.


로댕의 작품이 '생각하는 사람' 말고도 수두룩한데, 왜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만을 배웠을까. 이것은 아마도 학교에서 인간은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과는 다르다는 뜻으로.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왜 ‘키스’ 앞에서 숨을 죽일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프로이트의 어록 중에서 내가 곧잘 인용하는 말이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본능과 우연이다" 본능과 우연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사를 들여다보면 한결 눈이 맑아진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다. '키스', '영원한 우상', '칼레의 시민들', '걷는 사람', '지옥의 문'도 대표작 반열에 들어간다.
파리에서 로댕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로댕미술관과 오르세미술관이다. 로댕미술관은 나폴레옹의 유해가 봉안된 앵발리드 교회에서 가깝다.


로댕 미술관은 실외 전시장과 실내 전시장 두 곳이다. 장미정원으로 불리는 실외 전시장에는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들'과 같은 다양한 작품을 전시 중이다. 실내 전시장에는 '키스'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로댕미술관에서 나를 전율시킨 것은 '키스'였다.

 

▲ 로댕의 '키스'   


남녀의 입맞춤을 작품으로 남긴 예술가들이 많다. 화가 클림트도, 조각가 브랑쿠시도 '키스'라는 제목의 작품을 남겼다. 파블로 피카소도 '연인'이란 제목으로 남녀의 키스를 그렸다.


그런데 로댕의 키스 앞에 서니 빈(비엔나) 벨베데레 궁전의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침묵했을 때와는 다른 어떤 용솟음이 일었다. 대리석은 차가웠지만 남녀가 뒤엉킨 키스에서는 아름다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선사 시대 인간은 후배위(後背位)로 성교를 했다. 모든 동물이 그렇게 후배위로 종족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지상명령에 복종했다.
그러다 인간만이 어느 순간부터 정상위(正上位)로 진화했다. 인간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성교를 하게 되면서 키스가 성애(性愛)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침팬지를 포함한 동물들은 여전히 후배위에 머물러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권력욕…. 이중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욕망이 성욕이다. 성욕을 위해서라면 권력과 금력도 기꺼이 복무한다.


얼마 전 로댕의 키스가 서울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 어느 관람객도 키스 앞에서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모든 인간은 쾌락의 니르바나를 갈망하고 꿈꾼다.


로댕이 평생을 추구한 주제의 하나가 관능과 쾌락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장식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미술관에 설치할 문(門) 제작을 로댕에게 의뢰한다. 로댕은 '지옥의 문' 제작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모든 감정과 정념을 표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옥의 문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은 오르세미술관이다. 지옥의 문은 100여 개의 작은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 석고로 된 조각 작품들을 하나씩 뜯어본 소감을 나는 이렇게 썼다.


"조각의 주인공들은 전부 벌거벗은 모습이다. 쾌락의 절정에 있는 인간부터 파멸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까지. 그중에는 아주 작은 형태의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태어나 생을 마칠 때까지, 그 생로병사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과 오욕칠정! 지옥의 문을 감상하면서, 조각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인간의 감정과 대면하면서 나는 여러 번 몸서리쳤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전율을 느끼곤 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욕망과 감정이 모두 표현돼 있었기 때문이었다"(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예술인 편 중)


로댕은 37년간 지옥의 문에 매달렸지만 결국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미완성인 상태에서 조각가는 눈을 감았다. 신(神)의 손이라는 로댕도 인간 욕망은 끝내 묘사할 수 없었던 것인가.

 

▲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지옥의 문'   



◇대한민국은 세속국가다!


우리는 성추문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에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국내 미투(Metoo) 사건의 경우,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주로 미투의 장본인이 됐다. 로만 칼라의 사제들처럼 고상한 말만 하던 사람들이 실상은 뒤에서 인격권을 침탈하는 성범죄를 일삼아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런데 미투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성 담론이 사라져버렸다. 방송과 대학과 강연장에서 성(性)은 금기어가 됐다.


성을 주제로 한 농담도 불가능하다. 대학은 외부 강사를 초청하면서도 혹시나 섹스 이야기가 나올까 전전긍긍한다. 성 담론을 불편해하고 불온한 그 무엇처럼 여긴다. 섹스 이야기만큼 아름다운 주제가 또 어디 있는가. 모든 담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곳이 대학사회 아닌가. 연세대 마광수 교수 같은 인물은 더 나오기가 힘들어졌다.


독일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프로이센은 어떻게 폭발적으로 세력을 키워 1870년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나. 정부가 정책적으로 섹스를 장려한 결과였다.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오는 처지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대한민국은 세속국가다. 도덕주의자들의 나라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느 순간 먹는 것과 섹스를 밝히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라.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길로 나라는 망한다. TV에 먹방은 넘쳐나면서 왜 섹스 이야기는 외면하나. 왜 섹스숍 영업은 허가해놓고 창문을 불투명하게 칠해 음습한 공간으로 만드나. 그럴수록 성은 왜곡되고 남녀의 성적 불평등은 심화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헌법에 보장된 행복 추구권이다. 인간은 식욕과 성욕이 충족될 때 행복감을 느낀다. 로댕의 '키스'를 찬미해야 하는 이유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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