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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2題] 빠삐용·소확행(小確幸)
빠삐용, '모든 기억은 망각된다'
기사입력: 2019/11/11 [18:15]
유용식 기자 유용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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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영화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    

 

영화 '빠삐용'(Papillon). 빠삐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반려견 중에도 '빠삐용'이라는 고급 견종이 있다. 큰 귀가 나비처럼 나풀거린다고 해서 빠삐용으로 불린다.
장년층 이상은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영화 '빠삐용'을 잊지 못한다.
흔히 사용되는 어법인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는 영화가 바로 '빠삐용'이다.

 

▲스티브 맥퀸과 라미 말렉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첫 번째 '빠삐용'은 1973년에 개봉됐다. 같은 이름의 자서전이 세상 빛을 본 지 4년만이었다. 빠삐용은 1931년 파리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도형지에 수감된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ere, 1905~1973)의 이야기다. 앞가슴에 새겨진 나비 문신으로 인해 그는 본명 대신 '빠삐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영화에서는 두 차례로 나오지만 실제로 빠삐용은 13년간 복역하며 아홉 차례 탈옥을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수감된 곳이 '악마의 섬'. 상어밥이 되지 않는 한 살아서는 절대 나오지 못한다는 악명의 섬. 빠삐용은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코코넛 포대 두 개를 연결한 뗏목에 올라타고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난바다로 둥둥 떠가는 빠삐용! 스티브 맥퀸이 연기한 빠삐용은 이렇게 '자유를 향한 끝없는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세계인의 뇌리에 깊게 새겨놓았다.


이 영화는 2016년 여름 국내에 재개봉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월에는 찰리 허냄과 라미 말렉이 주연한 두번째 '빠삐용'이 국내에 개봉됐다. 실제로 이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2017년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제작된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900만 관객 동원이라는 대성공을 거두자 뒤늦게 라미 말렉의 '빠삐용'을 개봉한 것이다. 어쨌든 두 번째 빠삐용은 한국 개봉 기준으로 따지면 첫 번째 영화가 나온 지 46년만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스타 라미 말렉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에 열광한 관객들은 빠삐용으로 인해 프레디 머큐리의 이미지가 희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모른다. 또한 영화 소비층이 1970~1980년대와는 달리 무거운 주제의 진지한 서사(敍事)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을 수도 있다.

 

▲ 자서전 ‘빠삐용’을 출간한 후의 앙리 샤리에르   

 

▲탈출에 성공한 빠삐용, 그 후


2019년의 '빠삐용'은 1973년의 '빠삐용'과 같은 원작을 토대로 시나리오가 쓰이다 보니 여러 대목에서 유사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당연하고 또 불가피한 일이다. 1973년 작을 기억한 채 2019년 작을 접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빠삐용과 드가를 각각 연기한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자꾸만 오버랩되고 어른거렸을 것이다. 사실 외모로만 보면 찰리 해넘이 실제 빠삐용을 많이 닮았다.


초두효과 탓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많다. 특히 '악마의 섬'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악마의 섬이 세상에 그 존재가 드러난 것은 독일에 기밀을 넘겼다는 간첩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드레퓌스 대위의 유형지로 알려지면서다. 1898년 에밀 졸라의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가 파리의 한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면 드레퓌스 대위는 영원히 이 섬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973년 작에는 '드레퓌스 벤치'가 나온다. 빠삐용이 무심코 돌덩이로 만든 벤치에 앉자 어떤 남자가 다가와 말한다.
"누가 이 벤치에 앉으라고 했어. 이 벤치는 드레퓌스 대위의 벤치란 말이야"


번역가 문신원이 옮긴 '빠삐용'(황소자리) 후반부에 보면 드레퓌스 대위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빠삐용이 바위에 부딪쳤다가 흘러나가는 조류 흐름을 살피다가 탈출 가능성을 발견한 곳이 바로 '드레퓌스 벤치' 아래에서였다. 2019년 작에서는 드레퓌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하지만 2019년 작의 미덕은 엄연히 존재한다. 1944년 탈출에 성공한 빠삐용의 그 후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이 대목은 1973년 작에 감동받았던 영화팬들이 몹시 궁금해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빠삐용은 코코넛 뗏목을 타고 프랑스령 기아나 본토에 도착해 다시 영국령 기아나로 가 얼마간 지낸다. 그러다 베네수엘라로 밀입국한다. 그곳에서 다시 수감생활을 한 뒤 석방되면서 베네수엘라 시민권을 획득해, 카라카스에서 베네수엘라 여인과 결혼해 25년을 성실하게 살았다.


1969년 초 앙리 샤리에르는 프랑스 파리로 온다. 살인 누명을 쓰고 프랑스를 떠난 지 38년만이다. 공소시효가 종료되지 않았지만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러 파리로 온 것이다. 그는 앞서 자신의 경험을 공책 13권에 써서 파리의 출판사 편집자에 우편으로 보냈었다.


1969년 앙리 샤리에르의 자전회고록 '빠삐용'이 출간됐다. 프랑스는 경악했다. '빠삐용'은 출간 직후부터 장장 21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그는 희망의 상징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빠삐용은 그 후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돼 1300만 부가 넘게 팔린다.)


1970년 프랑스 법무부는 공식적으로 앙리 샤리에르에 대해 사면을 결정해 영구 귀국을 허락했다. 그와 함께 악명 높은 기아나 유형지도 폐쇄됐다. 1973년 '빠삐용'이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그는 또다시 세계의 영웅으로 주목받았다.


2019년 작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출판사 편집자가 앙리 샤리에르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편집자가 앙리 샤리에르에게 13권의 원고 뭉치를 내밀며 묻는다. "이걸 선생님이 직접 썼다는 말입니까?" 앙리 샤리에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아내의 설득으로 쓰게 됐죠. 기억이 온전할 때 쓰라고 해서" 모든 기억은 유실(流失)된다, 쓰지 않으면.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이승기에 표절당하다(?)

 

노벨문학상은 2019년에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를 비껴갔다. 연극 '관객모독'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페터 한트케와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가 노벨 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일본은 문학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28번째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국내의 하루키 팬들은 하루키가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 아쉽고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너무 속상해 할 것도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키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까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숏·확·행’ 광고모델 이승기


나는 기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중교통을 애용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우스개로 BMW라고 한다. 버스(Bus)·지하철(Metro)·도보(Walking)의 줄임말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BMW의 장점은 계절 변화와 더불어 세상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면 환승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광고를 보게 된다. 광고는 계절과 시류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오래 가는 좋은 글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인간 삶의 모습을 나무의 수액처럼 끌어올린 글이다.


서울시내 버스 정류장에는 보통 광고판이 2~6개가 설치돼 있다. 하루키가 버스정류장 광고판에 등장한 것은 일각에서 '일본 불매 운동'이 한창이던 팔월이었다. 버스정류장 광고는 2~3개월에 한 번씩 교체된다. 방송인 이승기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에 '숏·확·행'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박혀 있었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크고 강렬했다. '숏·확·행' 위에 '짧아서 확실한 행복'이라는 짧은 설명문이 붙어 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APP) 광고다.


하루키 팬이라면 이 광고판을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물론 하루키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숏·확·행'을 보고도 저게 무슨 말이지 하고 소 닭 보듯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승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도 '숏확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자신을 홍보했다. '숏확생 폼확행'. 웃음이 나온다. 배우 이진욱도 짧은 패딩점퍼를 SNS에 광고하면서 '숏확행'이라고 했다.
어떤 여행 작가는 자신의 강연제목을 '나의 소·확·행 여행을 찾아서'고 달았다. 단행본 제목에도 '소확행'이 등장했다. '소확행워라벨 시대의 취미생활백서', '소확행 답사' 같은 책이 그렇다.

 

▲하루키 조어능력의 원천은?


'숏·확·행'은 '소·확·행'의 변형이다. '소확행'의 지적재산권은 하루키가 갖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임말로 소확행(小確幸)이라 부른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 발견하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뜻이다. 오래 전 런던에서 지하철 테러 사건이 났을 때 어떤 시민의 인터뷰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테러를 당하고 보니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겠다"


2018년 유행어 설문조사에서 '소확행'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 줄임말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방증한다. 장년층 이상은 대체로 젊은 세대의 줄임말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소확행'은 예외다.


하루키가 군조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한 게 1979년이다. 나이 서른 살 때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내와 함께 재즈카페를 운영하던 어느 날 문득 그는 미칠 듯이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영업이 끝나면 술 냄새 찐득한 카페에 남아 혼자 글을 썼다. 그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소확행'은 1986년에 나온 산문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 살짝 등장한다. 김난주가 번역한 책을 펴본다. 49쪽에 이런 단락이 나온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한 행(幸)복의 하나(줄여서 小確幸)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체계인지도 모르겠다"


국내의 하루키 팬들은 '확고한'을 '확실한'으로 살짝 변형을 주었다. '소확행'이 국내에서 이처럼 크게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과 한국이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고대 로마제국의 언어인 라틴어와 같은 게 극동 아시아의 한자(漢字)다. 뜻글자인 한자는 조어(造語) 능력이 탁월하다. 중국은 거의 모든 외래어를 조어를 통해 한자어로 만들어내는 나라다.


하루키는 말한다.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체계인지도 모르겠다"고. 소확행을 생각해내고 그걸 성문화(成文化)시켜 세상에 없던 말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 여기에 하루키의 천재성이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눈에는 '소확행'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루키가 막 데뷔했을 때 기성 문단은 그를 몹시 불쾌해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하루키는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茶川龍之介),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같은 기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코스를 밟아 소설가로 데뷔한 사람이다.

 

▲‘나만의 특수한 사고체계’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


직업 음악가가 아닌 사람 중에서 하루키만큼 음악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풍부하고 깊은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의 작가들 중 하루키만큼 음악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단연코 한 명도 없다. 록, 팝, 재즈, 클래식을 비롯해 심지어 보사노바까지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10대부터 20대까지 음악 속에 빠져 살았다. 재즈나 실컷 들으면서 살고파 명문대학을 나오고도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재즈카페를 차린 사람이다. 음악은 만국 공통언어다. 음악은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인종·종교·언어라는 가로대를 사뿐히 뛰어넘는다.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예술의 최정점에 있는 게 음악이며 음악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음악적으로 사고하고 음악적으로 구성하고 음악적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은 하루키뿐이다. '나만의 특수한 사고체계'는 바로 음악적 사고방식의 세계를 뜻한다. 그의 소설은 50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아마존강 부족과 시베리아 원주민을 제외하고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뜻이다.


하루키가 동양인으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인간 본성에 관한 주제를 음악적 리듬으로 문장을 풀어내기 때문이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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