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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런 한일관계는 없었다…'문전박대' 당한 국회 대표단
위기의 한일관계, 국회 방일 대표단 1박 2일…"우리가 거지냐" 폭발
기사입력: 2019/08/04 [18:15]
구정욱 기자 구정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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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무역갈등에 따른 수출규제 해결책을 마련을 위해 구성된 국회 방일단 서청원 단장이 1박 2일 일정을 마친 1일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스1 제공)   

 

불신의 벽은 높고 견고했다. 국회의장의 친서를 손에 쥐고 출국한 국회 방일 의원단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강행을 막을 수 없겠다는 뼈아픈 현실을 체감하고 돌아왔다. 일본 여야의 초당적 '불신'이 우리 의원단의 초당적 호소를 압도한 격이었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문전박대'는 의원외교의 한계를 분명히 그었다.


우리 의원단의 대화 노력은 일본 정부 측에 조금도 가닿지 못하는 듯 했다. 갈등하던 여야 5당 의원들이 어렵사리 초당적 의원단을 꾸려 한 비행기를 탄 결론 치고는 안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말 많고 탈 많았던 1박 2일간의 국회방일단 일정을 타임라인으로 정리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2, 7월 31일 오전 8시 40분~오후 3시


일본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이틀 앞둔 지난 7월 31일 여야 5당 의원으로 꾸려진 국회 방일의원단이 도쿄 뉴오타니 호텔 16층에서 자민당 중진인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과 오찬 및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보안은 삼엄했다. 일본과 한국 취재진 수십여 명은 로비에서 대기하며 브리핑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오후 1시 45분 국회 방일의원단 단장 서청원 의원이 방송 카메라와 취재진 앞에 섰다.


한일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폭죽처럼 터졌다. 8선 관록의 원로지만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서 의원은 양국관계가 이대로 가선 안된다는 내용의 한일 공동입장문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누카가 회장과 계획에 없던 추가 만남까지 성사되며 대화 무드가 달아올랐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2, 7월 31일 오후 3시 30분~밤 10시


오후 3시 30분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 당사를 찾았을 때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미리 나와 기다리며 의원들에 일일이 악수를 건넸다. 야마구치 대표는 "무더운 날씨에 이웃, 벗인 여러분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일본과 한국은 지금까지 민간차원에서 교류가 두터워져왔고,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자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담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4시 이후 우리 측 실무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간담회장 밖으로 실무자들이 조용히 나와 여기저기 긴박하게 전화를 돌렸다. 불과 1시간 후인 오후 5시 일정이었던 자민당의 '2인자' 니카이 토시히로 간사장 측에서 회의를 미뤄야겠다는 통보를 해 온 것. 자민당 측에선 일정상 만남이 불가능하다면서, 다음날(8월 1일) 오전 11시 30분에 만나자고 알려왔다. 우리 측 의원들은 이말을 믿었다.


상황은 곧 반전됐다. 저녁 9시가 지나 일한의원연맹의 가와무라 다케오 간사장이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연락해 면담 취소를 통보했다. 의원들은 밤 10시까지 호텔 바에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 의원단 일부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찾은 재일동포단체 관계자들은 "일본인들은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속내를 얘기하지 않는다. 진작에 왔어야 한다. 이제와서 만난다고 마음을 돌리겠나"라며 "일본에서 밥벌이 하는 우리는 수족관 바닥을 기며 숨죽이고 있는 '광어'가 된 기분"이라고 참담함을 표현했다. 일본 특유의 손님 접대 문화인 '오모테나시(진실된 마음으로 손님을 접대하다)'는 자취를 감췄다.

 

▲ 지난 1일 서청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 방일의원단이 일본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뉴스1 제공)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1, 8월 1일 오전 11시~오후 1시


다음날 오전 '외교적 결례' 논란이 불붙었다. 방일 의원단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너무 아베 정부를 안만나줬다는 일본 측의 서운함과 불신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자민당 측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긴급안보회의를 취소 이유로 들었는데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회동 불발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던 취재진이 일정을 위해 승합차에 올라탄 강창일 의원에 질문을 던졌다. 강 의원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 의원은 "아주 결례야. 결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당과의 만남을 재추진하느냐'라는 질문에는 "우리가 거지냐"고 잘라 말했다. 이어진 일본 야당인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의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국민민주당 측에선 당사 건물에 우리 측 취재진의 출입 자체를 거부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1, 8월 1일 오후 1시 30분~오후 4시


의원단은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당사로 향했다. 입헌민주당에선 당대표 대신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이 나왔다. 모두발언 후 비공개로 전환된 지 50여 분이 지난 무렵, 후쿠야마 간사장이 먼저 급하게 뛰어나갔다. 이날 임시국회 개회를 선언하기 위해 일왕이 국회에 오기 때문이었다. 늦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정이 촉박해 손님을 남겨두고 주인이 먼저 자리를 뜬 셈이 됐다. 간사장이 나가자 우리 측 의원단은 취재진을 회의실 안으로 불러 브리핑을 자청했다.


매끈한 악수 아래 보이는 갈등은 생각보다 깊었다. 서청원 의원은 "일본 국민들이 (한국이) 징용문제 배상 약속을 저버리고 위안부 화해치유 재단을 해산했다고 보고, 기분이 굉장히 상해있다는 말을 일본 의원 대부분이 한목소리로 했다. 후쿠야마 간사장도 유감을 표명하더라"고 전했다. 윤상현 의원은 "일본도 초당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원내각제라서 그런 건지, 야당의 한계가 있어선지 몰라도 자민당이나 야당이나 말하는 것이 똑같더라"고 이마를 짚었다.

 

▲ 아베 신조 정권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뉴스1 제공)  

 

◇위기의 한일관계 어디서부터 꼬였나…재조명받는 65년 한일협정


한국과 일본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한일협정을 맺고 정식으로 수교했다. 약 14년이라는 회담 기간은 35년간 식민 통치를 한 가해국과 피해국 간 기초적 관계 맺기가 얼마나 험난한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협상은 기본 조약과 '청구권·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 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 조약에 서명하면서 마무리됐다. 공산주의의 팽창에 맞서 한일 간 협력이 필요했던 미국의 중재 노력은 여러 난관을 넘게 했다.


협정 체결을 통해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은 포항제철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투입돼 한국의 비약적 경제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양국 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양국 정부는 기본조약 2조에서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또 청구권협정 1조에선 일본이 청구권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으며, 2조에선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이를 두고 한국은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과 그 이전에 양국 간 체결된 모든 조약을 무효라고 해석했지만, 일본은 체결 당시엔 합법이었지만 국교수립을 맺은 시점부터 '이미 무효'라고 달리 해석했다. 일본 측 해석에 따르면 35년의 식민 지대도 합법적 조약에 의해 체결됐다는 것이다.


거센 협정 체결 반대에 직면했던 한국은 청구권 자금은 식민통치 책임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는 이 자금은 청구권 문제의 해결과는 관계가 없는 '독립축하금'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해석으로 법적 구조를 넘어서려 했던 것이다.


'65년 체제'는 불안정한 출발이었지만 냉전시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일본에서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하는 담화가 나왔고,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균열을 보이게 됐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 판결은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전제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강제 징용 배상문제를, 강제병합을 불법과 합법을 결론내지 못한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이 청구권 협정 3조에 의거에 중재 절차를 요청했을 때 우리 정부가 "일본이 일방적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한 일정"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난달 18일 '일본 경제보복과 한일관계' 포럼에서 "65년 체제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즉 불일치했던 해석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봉합 당사자조차도 영구히 지속될 거라 생각 안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우리 대법원은 청구권협정 체결로 국가의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청구권이 소멸될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일본정부도 개인청구권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많다. 1992년 일본 외무성 야나기다 순지 조약국장은 의회 답변에서 "일·한 청구권 협정에서 '양국간의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의 의미는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했다는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이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련 핵심소재 3종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규제 개시에 앞서 지난달 1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고시했고, 의견 공모 절차를 거쳐 전날(2일) 의결했다.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보복'이란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일 외교부로 소환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에게 "양국간 어려운 상황은 지난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여러 문제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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