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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금요단상> 일본 연호 令和, 비약적 발전하는가
기사입력: 2019/04/11 [11:31]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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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일본은 연호 「令和(레이와)」가 결정되자 아베 총리는 「令和」의 의미를 「국민의 단결, 나라 안팎의 평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주고받는 가운데 국가의 비약적 발전」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세기 이외에 「쇼와」라든지 「헤세」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공식적인 서류에서도 서기가 아닌 연호가 사용되고 「헤세 16년」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러한 연호는 1300년 동안이나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천황이 바뀌거나 큰 사건이 있을 때 연호가 바뀌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천황이 바뀔 때 연호도 바꾸게 됐다. 일본 연호를 보면 BC 8000에는 「죠몬시대」 BC 300에는 「야요이시대」 AD 300에는 「야마토시대」 593에는 「아스카시대」 710에는 「나라시대」 794에는 「헤이안시대」 1192에는 「가마쿠라시대」 1338에는 「무로마치시대」 1573에는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1603에는 「에도시대」 1868에는 「메이지시대」 1912에는 「다이쇼시대」 1926에는 「쇼와시대,」 1989에는 「헤이세이(平成)시대」에 이르렀다. 일본의 건국 신화를 보면 「혼돈의 바다만이 존재했던 가운데 신령이 세상을 창조하기로 마음먹고 많은 남신과 여신을 창조했다. 이자나기(남신)와 이지나미(여신)이다. 이자나기에게 세상을 창조하라며 보석으로 만든 마법의 창을 주고 이지나미가 창을 휘두르자 일본열도가 탄생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중국대륙과 한반도 사록을 보면 일본은 백제민이 세웠다. 백제 동성왕의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 무녕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며, 곤지의 양자다. 462년 왜에 있는 奈良百濟로 가는 도상인 각라도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융이다. 태어난 후 奈良百濟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일본어로 시마(島) 또는 사마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를 사마왕이라고도 했다. 대륙과 한반도 외에 왜에 있는 奈良百濟는 근초고왕 때 건국됐다. 당시는 해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라 왜의 奈良百濟를 자치적으로 통치하는 왕을 두고, 천황이라 불렀는데 총독과 같다. 사마는 그가 태어나자 생모와 함께 대륙백제로 돌아갔지만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 나라백제에 있는 곤지에게 다시 보내졌다.


 이처럼 백제 왕실에서 왕자를 마음대로 왜의 奈良百濟에 보내기도 하고 데려오기도 한 것은 백제가 지배하는 영토였기 때문이다. 백제는 왕자뿐만 아니라 백제의 문물을 奈良百濟에 전파하기 위해 백제 주민을 대거 이주시켰는데 403년(應神 14년) 2월, 백제의 봉의공녀가 대이주집단으로 나라백제에 건너갔다. 이것이 일본열도에서 衣縫의 원조다. 이때 나라백제의 강역은 시고꾸 섬과 마주 보는 혼슈의 凸처럼 나온 지역인 奈良縣의 영역은 大和郡, 山市, 奈良市, 天理市, 櫻井市, 高市郡, 御所市, 五條市, 大和高田市, 北葛城郡 등으로 이루어졌다가 關東平野(지금의 東京)까지 확대하면서 촌락이나 山川名에 百濟郡 百濟橋, 高麗村 高麗郡, 百濟山, 高麗町, 高麗彌縣, 胡麻, 巨摩, 駒, 小門, 大, 등 백제의 한자를 사용해, 백제의 문물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을 갖추었다. 奈良百濟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蘇我王은 665년 3월에 의자왕 아들 부여 용에게 왕권을 물러주었고, 부여 용은 奈良百濟 대신들의 추대로 天智天皇에 등극, 그해 9월 「다이노사라라(大野讚良)」 황녀와 결혼했다. 奈良百濟는 천지천황과 그의 아들 천무천황 代에 오면서 697년 국호를 日本이라고 했다. 日本이란 발음은 백제가 해(日)의 본(本)이 중국대륙과 한반도에서 옮겨졌다는 뜻이다. 왕궁이 백제에서 일본열도로 그대로 옮겨 앉기는 했지만 패망한 백제란 국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어 새로운 국호로 日本으로 지은 것이다. 이름을 百濟川, 마을 이름을 百濟村, 百濟町, 百濟鄕, 百濟縣, 사찰 이름을 百濟大寺, 百濟佛寺, 황궁 이름을 百濟宮, 천황의 시체 안치소를 百濟大賓이라고 불렀다. 奈良百濟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天智天이 된 사람이 백제 의자왕의 아들 夫餘 勇이었으니 일본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씨가 없다고 한다. 성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씨는 부여 氏 씨인데 성씨가 부여 씨라고 하면 일본은 백제민이 세운 국가라는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에 성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신화가 아니라 사실(기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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