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획/특집
거창유기공방 100여 년 기술 브랜드 달고 '명품'으로
4대째 전통 주물기술로 세계속의 대한민국 유기그릇 알려
기사입력: 2018/10/01 [18:34]
한태수 기자 한태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 (좌측부터) 4대 째 유기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이기홍 장인(3대 전수자)과 이혁 작가(4대 전수자)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선호도가 높았던 유기그릇(놋그릇)이 현대사회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면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다.


유기그릇은 살균력과 더불어 열 보존율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기는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우수한 그릇이다. 우수한 살균과 각종 미네랄 방출, 보온·보냉을 통해 음식의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함으로써 '건강'을 담아낸다. 고급 음식점이나 요즘 유행하는 빙수 프랜차이즈에서 놋그릇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전통 놋그릇을 만드는데 있어 핵심이 되는 요건은 바로 재료다. 거창유기공방은 구리 78%, 주석 22%의 합금비율을 철저히 지켜, 섭씨 1600에 달하는 뜨거운 도가니 안에 녹이는 과정을 반복! 총 나흘에 걸쳐, 직접 청동을 제작한다. 이렇게 완성된 청동은 흙과 주형틀을 이용한 전통 주물기술을 통해 견고한 유기그릇으로 탄생한다.

 

▲ 옻칠로 유기에 색깔을 입힌 작품    

 

◇거창유기공방의 역사

 

'거창유기공방'은 1924년 설립돼 올해로 94년간 주물유기 제작 및 유통이라는 한우물을 파 온 곳으로, 창업주인 김석이 씨(1886년생,1954년 작고)가 1924년 소규모 공방으로 시작한 이래 4대에 이어 전통 유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갈 곳을 잃고 있던 전통 주물유기를 붙잡아 되살린 3대 이기홍 장인, 세계속의 대한민국 유기를 알리고자하는 4대 이혁 전수자까지, 100여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전통 유기의 역사를 이어온 거창유기는 제품이 아닌 '작품'을 만든다는 철학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직접 고유의 낙관을 찍어내며 받는 이에게 특별함을 선물한다.


이러한 거창유기의 노력은 2003년 제33회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대통령상 수상, 2017년 경상남도 공예품대전 금상 수상, 2017년 우수공예품 2건 지정(차기세트, 빙수와죽세트), 2017년 공예트렌드페어에서는 2018년 파리 메종&오브제 한국관을 대표해 참여하는 우수 작가로 선정되는 등 40여 회가 넘는 숱한 수상 이력을 통해 빛을 발해 왔다.

 

 

▲ 부자의 공방 작업모습    

 

◇명문대 출신 '엄친아'인 4대 전수자 이혁

 

아버지의 기술을 잇는 가업을 승계해 100년 동안 만들어온 놋그릇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4대 전수자는 이혁(33) 작가다.
이 작가는 원래 서울의 소위 '명문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자동차 관련 대기업으로 취직한 그야말로 '엄친아'(유행어로 모든 면에서 뛰어난 남자를 뜻함) 였다.
그런데 이 잘 나가던 청년이 의외의 선택을 했다. 입사 5년 만에 사표를 내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유기공방으로 내려온 것이다.


"사실 처음엔 유기 공방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언제나 공방에 계실 것 같던 아버지께서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으시면서 가업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란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1924년 김석이 옹이 거창으로 들어와 놋그릇을 만들면서 시작된 거창유기는 이 작가의 할아버지 이현호(작고) 장인부터 아버지 이기홍(64) 장인까지 3대에 걸쳐 이어온 역사 깊은 공방이다. 그런 공방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역사의 단절을 의미했기에 이 작가는 가업승계를 택했다.


"처음엔 담금질과 열처리 등 모든 공정의 기초가 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부질, 가질 등 전체 과정을 반복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사무업무도 같이 해야 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이 경영인지, 현장의 기술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그만큼 가업승계는 만만치 않았다. 유기 제작은 물론, 제품과 직원 관리 등 공방의 모든 일을 챙겨야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워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상황은 일의 본질을 생각하게 해줬다.


"'거창유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롱런할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오전엔 기술을 배우고, 오후엔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자료들을 찾아보며 우리만의 차별점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100년을 이어온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강레오 셰프는 유기그릇으로 한식을 차린다.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업을 잘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공방의 전통을 트렌드에 맞게 소개할 방법부터 고민했다. 홈페이지 개편부터 시작했고, SNS를 활용해 유기 제품들을 소비자들에게 알려 판매할 방법을 찾아나갔다.


유기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가 보기에 유기제품은 크기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디자인으로 돼 있었다. 그 때 아버지의 공예품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이기홍 장인은 2003년 이미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로 유기 공예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이 작가는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저희 제품을 토대로 옻칠로 유기에 색깔을 입혀보고, 디자인도 새롭게 바꿔보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공예가로서의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게 많은 분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거든요"


새롭게 디자인한 유기에 대한 반응은 예상대로 '대박'이었다. 유기그릇에 새로운 색과 독특한 디자인을 더하자, 유기도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유기 공예 작가로 이름을 알려나갔다. 경남도 공예품 대전에서 금상을 받았고, 지난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메종&오브제'에 전시작가로 선정되며 자신과 공방을 알리기도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공예 작가로 올라섰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 덕'이라고 몸을 낮췄다.


"기존에 있던, 아버지께서 이뤄놓은 것들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은 아마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만큼 아버지는 제게 크고 고마운 존재죠. 덕분에 이 가업에 대한 자신 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앞으로 6년 뒤, 2024년이 되면 거창유기는 창업 100주년을 맞는다. 그 역사적 순간을 지켜내서일까, 이 작가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가업은 꿈이 아니지만 앞으로 200년을 유지하는 건 꿈이 될 수 있겠죠. 그 때까지 저희 유기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세계인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금속이 됐으면 합니다"


거창 유기공방은 오로지 수작업을 통한 전통 주물 기술을 고집하는 동시에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디자인과 편리성에 맞춰 상품 을 개발하고 있다.

 

사각접시, 샐러드 그릇, 와인 잔과 컵 등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한 제품들에는 "머물러 있으면 헤어나지 못해 항상 달라져야 한다"는 거창유기의 신념이 오롯이 담겨있다.

 


 

한태수 기자 한태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