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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은 연휴 못 쉬어요…0.2% 워라밸 박탈감 더 커졌다
기사입력: 2018/09/26 [18:30]
구정욱 기자 구정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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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시행됐지만…300인 이상 사업장은 전체 0.2%뿐
임금도 휴일도 격차 더 커져…"한국은 오늘도 '일중독' 국가" 


"올해도 용돈 부쳐드렸어요. 추석 끝나고 한번 내려가야죠"
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지만, 추석 연휴를 맞은 직장인 풍속도는 달라진 게 없다. 과도한 초과·연장근로를 줄이고 '쉴 땐 쉬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지만, 당장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전체 사업체 중 0.2%에 불과해 대부분의 직장인은 해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모(27·여) 씨는 "하필 추석 당일(24일)과 25일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제대로 쉬지도, 명절을 쇠러 고향에 내려가지도 못하게 생겼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 52시간' 적용 회사는 0.17%뿐…직장인 간 소외감↑

 

지난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은 주당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최대 주 52시간까지만 일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됐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과 함께 1인당 연평균 2069시간씩 일하는 '일 중독'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과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지만, 워라밸을 찾은 직장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노동실태현황'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전체 사업체(195만338개) 중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은 3358개(0.17%)뿐이다. 전국 1735만여 명의 직장인 중에서 264만여 명(15%)만 '칼퇴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나마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주52시간제가 시행되지만, 전체 사업장 중 61%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아 '워라밸' 실현은 요원한 꿈일 뿐이다. 심지어 기업 규모에 따라 임금도 2배 가까이 차이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300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 1인의 월 평균 임금은 298만3천 원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 직원의 월 평균 임금 543만9천 원보다 245만 원이나 적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은 '더 받고 덜 일하는' 반면 300인 이하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덜 받고 더 일하는'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 주 52시간 근로제가 '갈등'과 '박탈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형을 둔 중소기업 직장인 김모(31) 씨는 "형은 오후 5시 30분이면 재깍 퇴근하고 평일에도 취미생활을 즐긴다"며 "심지어 연휴 전날에는 점심만 먹고 퇴근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형이지만 열등감이 울컥 치밀었다"고 고백했다. 김 씨는 "이번 추석에도 형은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연휴 5일 내내 쉴 수 있지만, 나는 추석 당일 당직근무를 위해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며 "추석이 다가오면서 일이 몰려 며칠 전에는 병원에서 링거까지 맞았다"고 토로했다.

 

 

▲ OECD 회원국 연간 근로시간 (뉴스1 제공)    

 

◇정규직 vs 비정규직 격차도 커져…"여전히 일 중독 국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환경 격차도 더 벌어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조합원 9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0~12일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일 연휴를 모두 쉬는 노동자는 439명(48.7%)으로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반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136명(15.1%)에 달했다. '하루도 못 쉰다'고 답한 비정규직은 전체 응답자 67명 중 41.8%에 달했지만 정규직은 750명 중 13.1%(98명)에 그쳤다. 추석 상여금도 '없거나 10만 원 이하'라고 응답한 정규직은 46% 수준이었지만, 비정규직은 77.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로제와 공휴일 휴무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소수에 불과한 300인 이상 사업장 직장인에게만 혜택이 몰리면서 '직장인 간 소외감'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한솔 노무사는 "공휴일은 근로기준법상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다고 직장인들이 공휴일에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주 52시간 근로제와 함께 '워라밸'이 강조되면서 대기업 직장인은 더 많이 쉬지만 나머지 직장인은 그러지 못해 소외감이 크게 들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많은 직장인은 명절에 쉬려면 연차를 쓰거나 일을 해야 한다"며 "여전히 우리나라는 '장시간 휴일 없는 노동'에 처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최 노무사 특히 "소속 기업의 규모에 따라 휴일의 기간과 형태가 결정되는 것은 직장인에게 '차별'로 다가올 수 있다"며 "한국 사회가 아직 '일은 많이 해야 하는 것', '일은 많이 할 수록 좋다'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  전국건설노조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인근에서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와 일요일 휴무 보장을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뉴스1 제공)

 

◇백여 년 쌓은 노사문화 유럽 선진국 법보다 노사협약 중시

 

주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선진국들은 오랜시간 동안 단축 근로 경험을 쌓아왔다. 이들 국가가 찾은 답은 '노동시간 탄력성'이다. 업종 특성 등을 고려해 노사 단체협약으로 노동시간을 적절하게 조정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노동시간을 단축해도 생산성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높아졌다. 생산성에 문제가 없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취업률을 높여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1993년 연장근로를 포함해 일주일(7일) 평균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노동법 입법' 지침을 만들었다. 2003년에는 지침을 개정해 4개월 기간으로 주당 평균 48시간을 지키면 된다는 규정을 뒀다.
이른바 '탄력근로제'로 한주에 48시간을 초과하더라도, 다른 한주에 48시간 미만으로 일해 평균을 맞추면 된다는 것이다. 회원국은 EU 지침에 따라 노동법을 다듬었다. 회원국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은 차이는 있다. 불가리아, 독일의 경우 6개월을 허용하고 헝가리, 폴란드, 스페인은 12개월까지 가능하게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52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노사합의를 통한 '우회로'를 열어주지 않았다. 대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갖추고 있지만 3개월 단위로 위법 여부를 판단해 기간이 짧고, 업종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장시간 노동시간을 피하고 유연성을 갖추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게 노동시간 단축 연착륙의 핵심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의 근로시간 단축의 기본 베이스는 기업별 상황을 고려하고 노사 협약 등으로 인한 탄력성"이라며 "산업·업무·계절별 등으로 근로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성을 우리 법이 어떻게 수용해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부터 고민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탄력 근로제 실태조사를 연내에 끝내고 결과에 따라 확대하는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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