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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72) : 인생 이모작
기사입력: 2018/07/10 [10:58]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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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나는 빨간 '빤스'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우리 엄마 이야기에 따르면 그렇다. 시집온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들어서질 않더란다. 늘 걱정과 스트레스로 살아가던 어느 날, 새 장이 서는 첫날에 빨간 속옷을 사서 입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할머니의 귀띔을 듣고 동네 새댁 셋이 결기에 찬 외출을 감행했더란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악양 5일장이 역사적으로 처음 개장되는 날을 '디데이(D-day)'로 잡았단다.


 엄마를 포함한 세 새댁은 시골 장터 노점에서 똑같은 빨간 속옷을 하나씩 사 입고는, 그날 밤 각자 대붕의 꿈을 안고 거사를 도모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 같은 해에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나고, 빨간 속옷 동기 두 명도 곧 내 뒤를 따라 세상에 태어났으니, 우리 엄마는 6년 만에, 친구 엄마 둘은 결혼 10년 만에 아들을 보게 된 거란다. 이런 기다림 끝에 태어난 우리 58년 개띠 셋은 튼튼하게 자라고 굳세게 살아내어 올해로 환갑이 됐다.


 우리 엄마는 늘 당신의 간절함과 빨간 '빤스'의 초능력으로 나를 출생시킨 거라고 말씀하신다. 근거 없는 미신의 결과이긴 하지만, 친구 엄마들 역시 이 비하인드(behind) 스토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고, 이 영웅담을 술자리의 안주처럼 자주 끄집어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오늘 내가 빨간색 넥타이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내 출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동양에서는 그간 환갑을 인생의 큰 획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환갑이 되면 잔치를 열어 주인공을 크게 축하하곤 했다. 환갑까지 사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같은 환갑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평균수명이 길어져서다. 그 덕에 인생 '이모작'이란 표현까지 생겨났고, 이모작의 두 번째 출발은 환갑부터란 말이 상식이 됐다. 환갑, 야릇한 설렘 속에서 이런저런 고민이 되는 현실이다. 내가 오늘 그 중심에 서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핵심은 뭘까? 어쩌면 경제적인 문제 해결과 여유로운 생활, 이 둘이 아닐까 싶다. 이것만 마음대로 된다면 인생 후반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이에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 누군가는 노후 자금이 충분함에도 불안감 때문에 그렇고, 누군가는 '너무' 건강한 육체를 놀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인생 이모작이란 구호를 들고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미 사회적·국가적 이슈로까지 발전이 됐다.


 이모작이란, 일 년에 두 번 짓는 농사법이다. 인생을 놓고 '이모작'이라 할 땐, 인생 후반전에서도 수확이 가능한 삶을 말한다. 소득과 소유, 쇠해가면서도 놓기 힘든 우리의 보편적 욕망임에 틀림없다. 허나 인생 이모작에서의 행복은 결코 '수확'에만 있지 않단다. 노자는 가벼워지고 덜어내는 삶 속에서 답을 찾으라 하고, 공자는 '군자삼계(君子三戒)'에서 노탐(老貪)을 경계하라고 속삭인다. 물론 '지나침'을 조심하란 말일 게다. 그럼에도 이 말에 완전 공감을 하려면 난 좀 더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노년에 소요(逍遙)함보다는 소득이 있는 삶이면 좋겠고, 더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노추(老醜)인 줄 알면서도.


 인생이 뭐고 행복이 뭔지 열 사람에게 물으면 열 개의 답이 나올 것이다. 이는 자기 방식대로의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되면 그게 정답일 수 있다는 의미다. 언젠가부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개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小確幸)'을 즐기려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친구 하나도 고향인 시골에서 이런 '소확행'을 즐기고 있다. 내가 선망하는 인생 이모작과는 다른 삶이다. 얼마 전에는 벌을 키우려고 벌통을 샀단다. 직접 벌을 키워 떠낸 꿀이 얼마나 달까 생각하니 참 부럽다. 난 그렇게 살지 못함에 그저 친구 모습만 바라보며 대리만족할 뿐이다.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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