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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도시텃밭에서 찾은 ‘소확행’
기사입력: 2018/06/14 [12:11]
라승용 농촌진흥청장 라승용 농촌진흥청장 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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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승용 농촌진흥청장
 하루가 다르게 공기의 결이 부드러워지고 있다. 안온한 땅의 기운도 온몸으로 느껴진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계절이다.


 주택가 얕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아담한 텃밭에는 며칠 전에도 안 보이던 여린 모종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다. 길모퉁이 자투리땅도 씨앗을 품었는지 한껏 부풀어 있다. 담장 밑에 줄지어서 있는 상자텃밭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와 깻잎, 상추가 손바닥만큼 커지고 풋고추가 실해지는 날을 기약한다. 부지런한 '도시농부'의 손길 덕분이다.


 도시농부란 도심지역 내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해 취미나 여가, 학습, 체험을 목적으로 농작물이나 화초를 재배하고 곤충(양봉)을 기르는 이들이다. 작게는 아파트 베란다에 검소하게 텃밭을 가꾸거나 크게는 도시 인근에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농작물을 수확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도시농부는 190만여 명으로 2010년보다 무려 12배가 넘게 늘었다. 도시텃밭 면적도 10배 이상 넓어졌다.


 자발적 도시농부의 길로 이끄는 도시농업의 매력은 여러 가지다.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어 넉넉한 햇볕과 바람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일은 생명의 소중함을 경험으로 익히게 하는 산교육이다. 직접 기른 농작물을 믿고 먹을 수 있다는 뿌듯함과 풍성한 푸성귀를 이웃과 나누는 즐거움은 커다란 행복이다.


 도시농업으로 얻는 절반의 이점이 농사지은 수확물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치유와 치료, 인성교육 효과다. 학교 울타리 안, 텃밭에서 작물을 길러본 아이들은 창의적인 사고력이나 언어 표현력이 좋아지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농촌진흥청이 최근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텃밭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공감능력이 길러지고 폭력적인 언어 사용은 크게 줄었다. 손수 키운 채소를 먹으면서 편식을 고치기도 한다.


 성인 암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한 원예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의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도 전보다 줄었다. 일명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가 원예치료를 받기 전보다 40%나 증가한 것으로 관찰됐다.


 실버텃밭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자존감을 회복해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포용력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농진청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9월과 10월, 전국 6개 농촌교육농장에서 특수교육 아동을 대상으로 단기 치유농업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역시 친 사회적 행동이 크게 향상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치유농업의 가치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례들이다. 마침 1일 국회에서 학교텃밭 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교육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학교텃밭 관련 연구결과를 공유했다.


 치유나 치료, 정서적 안정 등 도시농업의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지난해 9월에는 전문자격증도 생겼다. 도시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교육하고 농사기술을 보급, 지도하는 '도시농업관리사'다. 전국 활동가가 590여 명에 이른다.


 넓은 시야에서 농업은 때를 알고 천천히 흘러가는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겨 농작물을 키우고 여럿이 함께 나누는 정서복합형 종합산업이다. 도시농업이 지닌 치유의 기능은 우리 농업이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가치 중 하나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말한 행복의 조건은 세 가지다.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익숙해서 자칫 소홀해지기 쉽지만 진정한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이 마음의 그늘에 온기를 더하듯 삶의 원기를 충전시킨다. 올 봄, 회색빛 도시에 초록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도시농부 대열에 합류해 땅에서 행복을 일구는 예비 농업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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