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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두드림으로 탄생하는 함양 방짜유기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44호 함양 방짜유기장 이점식 촌장 23일 방짜유기 제작 시연회
기사입력: 2018/03/14 [16:12]
한태수 기자 한태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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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형문화재 제44호 함양 방짜유기장 이점식 촌장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천 번의 두드림을 통해 만들어내는 방짜유기 함양군은 예로부터 전통 방짜유기의 산실이었다.


함양군 서상면과 서하면의 경계에는 예전 함양 방짜유기의 명성을 엿볼 수 있는 꽃부리징터가 있다.


이곳 수십 개의 방짜유기 공방에서 함양 방짜유기들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꽃부리징터 맞은편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44호 함양 방짜유기장 이점식(61) 촌장이 운영하는 함양 방짜유기촌은 함양의 전통 방짜유기의 맥을 잇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는 23일 오전 9시부터 함양 방짜유기의 제조 과정을 공개하는 시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1000도 이상의 고열과 수백 번의 두드림으로 만들어지는 함양 방짜유기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게 된다.


예전 함양군에는 30개가 넘는 유기 공방이 성업했으며, 70년대까지만 해도 10여 개의 방짜유기 공방이 남아있었다.


함양이 땔감 구하기가 쉽고, 인근의 합천지역 동의 산지가 있었으며, 차갑고 깨끗한 물이 있어 유기 공방이 발달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70년대 기계화 등에 밀리면서 그 모습이 사라졌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악놀이 등 향락문화를 규제하기 시작해 전통악기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번창하던 함양 징의 역사도 사라지게 됐다.


그러다 꽃뿌리에서 방짜유기 명인인 오덕수(1920~1978) 선생으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은 서상면 출신 이용구(83) 선생이 인근 거창에서 방짜유기 공방을 열었으며, 그의 첫째아들인 이점식 촌장이 아버지의 방짜유기 기능을 전수받아 옛날부터 전해지는 함양 꽃부리징의 명성을 잇게 됐다.


구리와 주석을 78대22로 섞어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융해시키고, 이를 두들겨 만들어내는 함양 방짜유기는 그 자체만으로 예술품이다.

특히 유기 중에서 징을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로우면서도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이점식 촌장은 “징은 굉장히 과학적이고 공학적이다. 유기는 모양만 만들어 깎으면 되지만, 징은 두께가 맞아야 제대로 된 울림을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징은 가운데 부분은 3.5cm, 가장자리는 1.5cm가 돼야 깊은 울림을 낸다. 장인의 감각으로 일정한 두께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징을 만들때는 6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대정과 센메·전메·앞메 등 쇠를 두드리는 매질꾼, 불매꾼, 가질대정 등이다.


징을 만들때는 대정이 집게로 잡고 매질꾼들에 맞춰 전체적인 징의 두께를 맞춰 나간다.


함양 방짜유기를 만드는 데는 육체적으로도 많은 힘이 필요하다.


1000도가 넘는 불에 맞서야 하고, 쉼 없이 매질을 해야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 촌장은 “예전에는 밤 12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낮에 일을 하게 되면 쇠의 달궈진 색을 볼 수가 없어서다. 불일은 아침 먹기 전까지 마무리하고 이후에는 깎고 마무리 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고단한 작업을 설명했다.


40년 가까이를 함양 방짜유기의 맥을 이어오는 이점식 촌장. 현재 그의 두 아들이 아버지 밑에서 전수 장학생으로 이점식 장인의 기술을 물려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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