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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68) : 선입견과 실수
기사입력: 2018/03/14 [11:21]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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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같은 아파트에 귀여운 딸을 가진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내가 이사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반갑게 목례 정도나 나눌 뿐 그분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루는 귀갓길에 그들을 만났다. 너무 무심한 할아버지라 할까 봐 꼬마에게 관심을 보이기로 했다. "유치원 재미있어?", "초등학교 다니는데요"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어떻게 수습할지를 몰라 얼른 말을 돌렸다. "요즘 바이올린 선생님이 오시는 것 같던데, 바이올린 배우나 보지?", "우리 엄마가 배우는데요" 이런 것을 선입견의 오류라 하는가? 그날 이후로 나는 꼬마에게 미소와 함께 "안녕?"이란 인사말만으로 관심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의 글에서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잔인한 형벌은 '판단'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공감은 됐지만 '가장 잔인한 형벌'이란 표현까지는 좀 지나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꼬마와의 일을 통해 판단의 죄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으며,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는지를 피부로 실감하게 됐다. 공자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공자가 이레를 굶었을 때 제자 안연이 쌀을 구해 밥을 지어 바치게 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안연이 부엌에서 먼저 밥에 손을 대는 것을 우연히 공자가 보게 됐다.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공자는 모른 체하며 상을 받은 후, 밥에 손을 대기 전에 깨끗한 밥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겠다고 말한다. 이때 안연이 고백한다. 깨끗한 밥도 아니고 자기가 먼저 손을 댄 거라고, 알고 보니 안연이 부엌에서 밥에 손을 댔던 것은 밥에 떨어진 재를 걷어내려다 손가락에 붙은 밥풀을 떼먹기 위한 거였다. 공자는 안연이 먼저 밥을 훔쳐 먹는 것으로 판단한 거였다.


그래서 공자님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말한다. "믿을 수 있는 건 눈이지만 눈도 믿을 수가 없구나. 믿을 수 있는 건 마음이지만 마음도 믿을 수가 없구나. 제자들아 기억하라, 사람을 안다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님을.(所信者目也, 而目猶不可信. 所恃者心也, 而心猶不足恃. 弟子記之, 知人固不易矣.)" 성현도 이런 판단의 죄, 선입견의 우를 범하며 살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범부에 있어서랴? 실수투성이인 내가 공자님의 일화와 가르침에서 큰 위로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역시 실수가 많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겨 묻은 개' 이야기 하나 하련다. 내 아내도 판단의 죄에 빠질 수 있는 심각한 선입견 하나를 갖고 있다. 혈액형과 성격 특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모든 문제를 혈액형에 근거해서 해석하려는 습관이 좀 지나친 편이다. 이 때문에 다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내의 의식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그 통계적 혈액형 '이론'은 물론 의학·과학적으로 맞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혈액형에 따른 성격유형이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끼어 맞추려 할 때는 정말 속수무책이다.


세상에는 선입견에 빠져 우를 범하기 쉬운 비과학적인 얘기들이 부지기수다. 특정 지역 출신이나 성씨에 관한 속설, 신체 부위의 특징에 대한 온갖 속설들은 판단의 죄를 짓는 데 큰 영향을 주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모범생인 학생이 자기 아버지가 교도소에 계신다고 말하면 선생님이 어떤 '업무'를 담당하느냐고 묻고, 문제아인 학생이 아버지가 교도소에 계신다고 말하면 언제부터 '복역' 중이냐고 묻기 쉬운 것도 선입견에 따른 결과다. 내 자신을 포함해 주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런 현상들, 한 둘이 아님에 틀림없다. 올해 어쩌다 '이순(耳順)'까지 넘겼다. 뭐든 성숙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나이임에 확실하다. 그러니 이제 환갑 이후의 삶에서는 사고의 폭도 좀 크게 넓히고, 내 주장의 강도도 좀 더 유연하게 해서 판단의 죄, 선입견의 우를 범할 확률로부터 크게 멀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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