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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66) : 봄을 기다리는 마음
기사입력: 2018/01/14 [13:06]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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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이 한 꼭지 완성되면 먼저 아내한테 검사를 받는다. 오탈자는 없는지? 주제에 벗어나지는 않는지? 붓글씨로 작품을 써놓고도 검사를 받는다. 내용은 괜찮은지? 결구(結構)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 물론, 아내가 글을 품평할 대단한 심미안을 가져서도, 서예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가져서도 아니다. 그냥 이러저러한 감상평을 듣다 보면 생각지 않았던 또 다른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좀 ‘기발한’ 서예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다. 시간 있으면 설거지라도 좀 할 일이지 쓸데없는 장난이나 친다고….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좀 엉뚱한 짓을 하기는 했다. 아내가 사다 놓은 새 때밀이 수건 위에 붓글씨로 “사람은 누구에게나 때가 있는 법이다.”라고 써서 벽에다 걸어 놓고, 퇴근하는 아내에게 감상평을 부탁했다가 이런 핀잔을 들었던 게다. ‘때’에 대한 ‘중의(重義)’를 때밀이 수건 위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붓글씨도 그런대로 잘 되었다는 생각에서 은근히 아내에게 높은 평가를 기대했던 것이었는데….

 

어쨌든, 사람에게는 몸에 ‘때’도 있지만, 기적 같은 기회의 ‘때’도 있고, 자연에서는 엄동설한의 힘든 겨울도 있지만, 꽃 피고 새우는 봄날의 ‘때’도 있는 법 아니던가. 때밀이 수건에 내가 글을 쓸 때의 의도는 역경의 시간을 잘 극복하고 행복의 ‘때’를 맞이하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기 위함이었다. 엊그제 우리는 겨울에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을 보내고, 며칠 후면 도래할 대한(大寒)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만 지나면 입춘(立春)이고 입춘이 지나면 봄은 결코 멀지 않게 된다. 어쩌면 소한・대한의 추위 때문에 따뜻한 봄날이 더 간절하고, 그러다 맞이할 봄날이기에 더 고맙고 행복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조상들은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봄의 도래를 기다리는 특별한 낭만을 하나 가지고 있었으니, 추위를 녹여가며 완성해 가던 그림,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가 그것이다. 이 그림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옛 우리나라 선비들도 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동짓날에 흰 매화송이 여든 한 송이(9×9)를 그려 벽에 붙여 놓고 매일 하나씩 붉은 색칠을 해 가면서 봄을 기다렸다는 지혜의 그림이다. 그래서 ‘구구(九九)’ ‘소한도(消寒圖)’라 하였다.

 

찬 겨울, 방안에서 여든 한 송이 매화가 붉은 색으로 다 채워질 즈음이면 어느새 창밖에도 실제 매화꽃이 붉게 피어 진짜 봄이 와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감동적인 기다림의 미학이던가?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던가?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피 속에도 이런 아름답고 감동적인 조상의 ‘긍정 DNA’가 분명 흐르고 있지는 않을까? 만일에 그렇다면, 오늘 우리 현실이 참으로 감내하기 힘든 겨울이라 할지라도, 마음고생 ‘만땅’인 사회 전반의 취업 보릿고개라 할지라도 우리 조상들이 멋과 풍류로 슬기롭게 희망의 ‘때’를 기다렸듯, 어렵기는 하겠지만 승화된 여유로움으로 울화병이라도 잘 막아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돌아보건대, 내게도 길고 힘들었던 보릿고개가 없지 않았다. 인생 백년의 절반은 언제나 보릿고개였던 셈이다. 나는 마흔부터 쉰까지 11년을 대학 시간강사로 전전긍긍했다. 딸린 세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기본이고, 하루도 쉼 없이 연구업적을 쌓아가며 미래를 준비해야만 했던 그 ‘가슴시린’ 보리 고갯길. 그 세월을 무슨 말로 속 시원히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토록 고생하고 불안하게 살아왔던 세월도, 이제는 오히려 아련한 추억이 되어 지금의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주고 있으니, 의미 있는 고생의 유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고생이 유익일 수도 있지만, 2월말이면 졸업하는 우리 아들에게는 겨울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른 따뜻한 봄날이 도래했으면 좋겠다.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힘없는 아버지의 바람일 뿐이지만….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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