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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금요단상>정치인의 신념과 자세
기사입력: 2017/04/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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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조선 정종 2년, 세자 이방원은 고려 때 주서(注書)를 지낸 길재(吉再)를 한양으로 불렀다. 길재는 이방원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를 해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방원은 길재가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선비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방원의 부름을 받고 한양에 당도하자 이방원은 임금에게 아뢰어 봉상박사(奉尙博士)라는 벼슬을 재수했다. 그러자 길재가 말했다. "신(臣)이 옛날에 저하와 함께 성균관에서 시경을 읽었는데 지금 신을 부른 것은 옛정을 잊지 않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신(臣)은 신(辛)씨 조정에 등과해 벼슬을 하다가 왕(王)씨가 복위하자 곧 고향에 돌아와서 여생을 지내고자 했사옵니다. 지금 옛날을 잊지 않으시고 신을 부르셨으니 신이 올라와서 뵙고 곧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사사로운 옛정으로 벼슬을 한다는 것은 신(臣)의 뜻이 아니오니 살펴 주시옵소서. 인재를 등용해 국사(國事)를 논하는 것은 우의(友誼)나 안면(顔面)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자 이방원은 "그대의 말은 바꿀 수 없는 근본 도리이니 의리상 뜻을 빼앗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대를 부른 것은 나지만 벼슬을 시킨 것은 주상(王)이니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주상에게 사면을 고하는 것이 옳을 것이 아니한가?" 하였다.


 이방원의 말에 따라 길재(吉再)는 자기에게 내린 벼슬을 거두어 달라고 임금에게 상서를 올렸다. "전하! 신이 본래 한미(寒微)한 사람으로 신(辛)씨 조정에 벼슬을 해 과거에 뽑혀 문하주서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듣건데 높은 벼슬에 오래 있으면 오만해지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해이 해 지옵니다. 더구나 권력이라는 것은 아무리 높아도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신이 문하주서에 벼슬을 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하오니 더 이상 신에게 벼슬을 내리지 마시옵소서. 바라옵건데 신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신(臣)으로 하여금 더 이상 권력에 머물지 않도록 해 주시옵고, 효도로 노모를 봉양하게 해 여생을 마치도록 해 주시옵소서. 권력은 가질수록 더욱 탐욕스러워지는 것이오니 신의 뜻을 받아주시옵소서"


 임금은 다음날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권근에게 물었다. "길재가 절개를 지키고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예전에 이런 선비가 있었는지 짐은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권근이 말했다."이런 선비는 마땅히 녹봉을 더 해 줘야 하옵니다. 그러나 청해도 억지로 사양한다면 스스로 그 마음을 정하게 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광무제는 한나라의 어진 임금이지만 엄광은 결코 벼슬을 하지 않았사옵니다. 선비가 진실로 벼슬에 마음이 없다면 억지로 조정에 나오도록 하는 것은 어진 임금의 도리가 아니오니 길재의 뜻에 따르시옵소서"


 임금은 권근의 말을 받아들여 길재가 벼슬을 하지 않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윤허했다. 홍여강이 말했다. "길재는 참으로 보기 드문 충신이옵니다. 어진 임금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고, 부귀공명을 뜬구름같이 여기고 벼슬과 녹봉을 헌신짝 같이 여겨 초야에서 여생을 마치려 했으니 충절한 선비가 아니옵니까" 길재는 뜻만 있었으면 얼마든지 높은 벼슬을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강직한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자신의 뜻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도리라고 생각해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한낱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 무상한 권력에 자신의 신념을 매몰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조정에 나올 것을 권유받았지만 길재는 끝내 벼슬을 거부하고 나오지 않았다.


 때와 상황에 따라서 쉽게 말과 태도를 바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 당(黨)에 갔다가 저 당(黨)에 갔다가, 당(黨)을 반 토막 냈다가 다시 붙였다가 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철새 정치인이란 말을 들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나라에 보탬이 되고 백성들에게 유익하다면 내 살갗인들 무엇을 아끼겠는가. 선왕께서 과인에게 늘 말씀하셨던 일이 국가 용도가 바닥이 난 것과 백성들 생활이 옹색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밤중에도 일어나 자리를 서성거린다" 정조 임금이 원륭(元隆)과 영우원(永祐園)을 배알할 후 유사에게 했던 말이다. 밤중에도 일어나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걱정했다는 정조 임금,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 과연 길재(吉再)와 같은 정치인이 몇 명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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