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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숲 함양...걸어서 여행하는 가을
곧은 선비정신, 낙옆길 정취와 함께 곳곳 명승지 감상
기사입력: 2010/11/09 [17:41]
신현철기자 신현철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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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림 숲길.     © 뉴스경남 기자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말했다. 걷기는 세상·정신·몸 사이에 존재하는 삼각관계를 활발하게 한다고.
 늦은 가을 낙옆 쌓인 산길을 걸어보지 않고는 한해를 마감하는 겨울을 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생의 의미를 상실케 할 것이다.
 구르몽의 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시몬, 나무 잎사귀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를 음미할 수 있는  함양군 산하를 찾아보자.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과 10호인 덕유산 품 속에 자리한 함양군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은 조용히 떠나는 나만의 가을여행지로는 최고의 품격을 지니고 있어 낙옆을 밟으며 천년의 숲과 곧은 선비의 정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품속에 있는 함양의 산하는 낙옆길 정취와 함께 곳곳에 명승지를 감상할 수 있다.
 ◇ 화림동(花林洞)계곡
화림동(花林洞)은 ‘아름다운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이 함양군 서하면과 안의면을 지나는데 이 일대 골짜기를 ‘화림동’ 계곡이라 부른다.
 화림동을 흐르는 물을 ‘금천’이라 하는데, 흡사 용이 승천 할 것 같은 짙은 물의 색깔이 푸른 구슬과 같다고 해 ‘옥류수’라고도 한다.
 쪽빛 물과 기암괴석 위에 올라앉은 정자들은 전국의 어느 정자에 뒤질세라 남성적인 호방함의 기를 맘껏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은 한국 정자문화의 대표적인 고장으로 옛 선현들은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바로 이 ‘화림동’계곡이다.
 특히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등은 굽이치는 계곡과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고요히 혼자만의 시공을 느낄 수 있다.
바쁜 일상을 잠시 털고 물소리에 귀 기울이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를 옆에서 듣는 양 심신의 평정심과 자아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영남사림학파의 발상지답게 이곳은 많은 선비들이 세속과 출세를 경계하고 정자에 올라 물소리, 나무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을 닮고자 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또 ‘화림동’ 계곡에는 선비들이 걷던 옛길 6.5㎞를‘선비탐방로’로 개설해 가족과 연인이 계곡을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해 놨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시골마을을 만나게 되고 가을걷이를 하는 촌로와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지친 몸을 쉬어 가려 고개 들어보면 시원하고 품위 있는 정자가 길손을 편안함으로 반기고 그 위에 잠시 몸을 뉘어 바람의 선율을 느끼면 풍류를 즐기던 옛 선현들의 흔적을 현판에서나 오래된 툇마루에서 느낄 수 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선생도 이곳 ‘화림동’을 여행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 용추(龍湫)계곡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우뢰와 같고, 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곳은 옛 부터 어리석은 사람도 이 계곡의 아름다움에 삼매경에 빠진다고 했을 만큼 천혜의 아름다운을 지닌 곳이다.
 이곳은 신라시대 ‘각연조사’가 창건한 ‘장수사’에 딸린 4대 암자 중의 하나인 ‘용추암’이 있다.
 6.25때 장수사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용추암’이 ‘용추사’로 승격돼 남아있다. 이무기 전설이 있는 용추폭포, ‘무학대사’가 숨어 지냈다는 ‘은신암’ 매의 모양의 매바위, 삼형제의 우애가 깃든 삼형제 바위, 자연속의 휴양소 용추자연휴양림. 신라시대 이야기가 있는 용추사 일주문등은 멋스런 풍경과 함께 역사와 전설이 공존하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인근에 기백산, 금원산, 황석산, 거망산 등이 있어 10여㎞용추계곡을 끼고 등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용추사(龍湫寺)-전통사찰 제86호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인 쌍계사(雙溪寺)의 말사(末寺)이다.
 6.25 동란 때 소실돼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해 1959년 재건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고,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덕유산장수사 일주문(德裕山長水寺 一柱門)’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 돼 있다.
 이곳 장수사에서 ‘설파’ 상언대사(雪坡 尙彦大師)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華嚴經)을 강의 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군자정(君子亭)-문화재자료 380호
 지곡면 개평마을 출생으로 초선초기의 인물인 일두(一?) 정여창(鄭汝昌) 선생을 기리기 위한 정자다.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에 통달했으며, 조선의 최고의 유학자를 말하는 동방 5현의 한분으로 많은 유학자들의 스승으로 추대 받았다. 선생은 유학의 논리적 핵심부분인 ‘이기론’ 을 꽃 피우셨으며, 지행일치를 강조했다.
 무오사화에 궁성으로 유배되고 사후엔 부관참시를 당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후에 동방 18현으로 선정돼 유교에서 ‘사표’(師表)로 모시고 있다.
이 정자는 정여창 선생이 안음현감일 때 공무의 여가에 자주 머물며 소요를 했던 곳으로 큰 바위 위에 ‘영귀대’라는 각자가 일두 선생과 관련이 있어 후에 ‘군자정’을 세웠다.

◇ 거연정(居然亭)-도유형문화제 제433호
 두문동 72현 중 한사람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인 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처음 시복거(始卜居) 한 것을 기념해 그의 후손 전재학과 전민진이 1872년 추모해 건립했다.
 다른 정자는 자연을 조망하는 위치에 있다면 거연정은 자연과 동화돼 자연 속에 위치한 정자로 가설한 구름다리 등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병풍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자연이 내게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세상사 모든 시름을 잊게 하는 곳”이다.

◇황암사
 황암사는 조선 선조30년(1597)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곽준, 조종도 등을 모신 사액(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어 현판이나 천에 글을 쓴 것)사당이다.
 황석산성은 고려 때부터 있던 것으로 당시에는 방치돼 있다가 정유년에 안의현감 곽준이 성을 정비하고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끝내 산화했던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정유년(1597넌)8월16일(음)에 왜장 가또, 구로다 등의 지휘로 3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시작된다.
 2만7000 병력을 이끈 왜구는 성을 겹겹이 포위, 압박하면서 회유전술로 나오지만 성내에는 당시 안음현감인 곽준(남문)과 前함양현감인 조종도(북문), 그리고 김해부사인 백사림이 성을 지키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고자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민관, 남녀노소가 혼연일체가 돼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화력과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문이 열리자, 성은 순식간 아수라장이 됐다.
민간인과 사병들은 투항하지 않고 목숨을 던져 마지막 까지 저항 해 보지만 전세가 기울자 부녀자들은 더러운 왜적에게 죽을 수 없다며 낙화처럼 떨어져 죽으니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바위가 ‘피바위’다.
 곽준현감도 장렬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 두 아들과 사위 그리고 딸이 목숨을 바치니, 충과 의가 고금에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렇듯 황암사는 ‘충’과‘의’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액’을 내려 제사를 지내다가 국운이 기운 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에는 사실조차 은폐됐다가 지방민들이 발의해 성역화 사업이 이뤄져 옛 선현들의 우국충정을 느낄 수 있는 비운의 역사가 묻혀있는 장소다.
 ◇ 광풍루(光風樓)
1412년(태종12년) 당시 안의현감인 전우가 처음 창건해 ‘선화루’(宣化樓)라고 이름 지었다.
그뒤 1494년(성종25)년엔 정여창현감이 다시 중건해 ‘광풍루’(光風樓)라 개칭 했는데, 건물구조는 정면5간, 측면2칸, 2층이며 5량 구조 팔작지붕이고 겹처마다.
 ‘광풍’이란 뜻은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한 말인데 ‘황정견’이 ‘주돈’이를 존경해 쓴 부분을 인용할 글귀다.
 (庭堅稱 基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정견이 일컫기를 그의 인품이 심히 고명하며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도다."라고 했다. 광풍루 가까이에는 제월당(霽월당)도 있다
◇ 상림(上林)-천연기념물 154호
 상림공원은 1100년 전에 최치원선생이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애민사상이 깃든 곳이다.
 당초 이름이었던 대관림(大館林)은 ‘대자연의 쉴만한 숲’‘휴식을 취할 수 있는 큰 숲’을 의미하는데 요즘 자연휴양림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의역을 하자면 자연휴양림이란 의미가 함양 상림공원에서 최초로 쓰인 셈이다. 최선생이 해마다 겪는 물난리로 시름하는 백성을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상림공원이다. 상림공원은 학술적 가치와 보존 가치가 있어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전국 20여 곳의 숲 가운데 유일한 낙엽활엽수림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호안림이며, 인공림이다. 하지만 전혀 인공림답지 않게 나무들의 배열이 아주 자연스럽다.
 숲 내에는 ‘사운정’ ‘함화루’ ‘최치원신도비’ 등 다양한 문화유적도 있다. 상림은 제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보존해야 될 아름다운 숲(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될 숲)으로 선정됐으며,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누림 쉼터상도 수상한 바 있다.
◇ 오도재(悟道峙)
 깨달을 悟 - 길 道, 이 길을 오르게 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 길을 영남학파 종조인 김종직선생을 비롯해 정여창선생, 유호인 선생, 서산대사, 인오대사 등 많은 시인묵객이나 수행자들이 넘나들었으며 많은 여행자들이 삶의 지혜를 얻고자 이 고불고불한 고갯길을 넘는다.
 오도재 정상(773m)삼봉산과 법화산이 만나는 곳에 우뚝 솟아 있는 문이 있는데, ‘지리산제일문’ 이다.
 이 관문은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성곽길이 38.7m, 높이 8m , 폭 7.7m, 문루 81㎡ 규모로 우리의 전통양식을 살리고 성곽과 문루를 고루 갖춘 아름다운 팔작지붕 형식으로 2006년 완공, 지리산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웅장한 자태를 선보이고 있으며,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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