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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들의 대부, 소외된 이웃의 아버지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여래사원 ‘동봉스님‘, 40여 년...희망의 불빛 밝히며 부처님의 자비 실천
기사입력: 2010/11/17 [15:51]
정희성 기자 정희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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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봉스님.     © 편집국 기자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73년, 절에 심을 상록수를 구하기 위해 거제도를 방문한 동봉스님은 우연히 해금강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방문하게 됐다. 동부면 소재지에서도 560리나 떨어져 뱃길로 오가던 낙도(落島)학교에 마음이 끌린 스님은 그해 사비를 들여 제 24회 개천예술제를 맞아 학생, 교사, 주민 90여 명을 진주로 초청했다. 개천예술제와 진양호, 그리고 도로를 오가던 자동차를 보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동봉스님의 40 여 년의 긴 봉사활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저 사회에서 들어온 돈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것 뿐”
 
 동봉스님은 강산이 변해도 4번은 변했을 40여 년간을 한결같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희망의 불빛이 돼 주고 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남을 위해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40년을 하루같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19살 되던 해인 1958년, 깨우침의 길을 찾아 속세를 떠났다. 1969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와 1975년 동국대 행정대학원를 졸업한 스님은 1971년 진주 의곡사 주지로 부임했다. 이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긴 동봉스님은 불교는 이론이 아닌 실천이라는 믿음으로 사회의 소외된 곳을 찾아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희망의 등불을 밝혀 주고 있다.
 진주 비봉산 자락의 의곡사 주지 취임 이후인 71년 4월부터 스님은 부모 없이 생활하는 고아들과 학업성적이 우수하지만, 경제적 여건의 어려움으로 진학을 포기해야할 처지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조달하고 숙식을 제공해 그들이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아버지가 되어 줬다.
 또 경로효친사상의 저변확대를 위해 지난 1979년부터 시민위안 경로잔치와 생일잔치 열어 30년간 계속해 오고 있으며 진주교도소의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교화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저 사회에서 들어온 돈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동봉스님은 절을 크게 짓고 커다란 불상을 마련하는 등 외적으로 팽창해 부처님 공양한다고 불심이 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늘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허리숙여 일하고, 두 손을 마주 합장하며 복을 빌어온 동봉스님이 2008년에야 진주시민상을 수상한 것은 어쩌면 늦은 감이 있다.
 
△ 독거노인의 든든한 버팀목
 
 동봉스님은 지난 1979년부터 노인들을 위해 해마다 경로잔치를 벌이고 있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떡과 음료, 수육 등으로 이들을 대접하고 인기가수를 초청해 신나는 잔치한마당을 벌인다. 진주지역 독거노인들이 매년 스님의 경로잔치를 기다리는 이유다. 스님은 "처음에는 상봉동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어려운 노인들과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으로 시작된 행사가 세월이 지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행사를 이어오기 어려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스님은 외로이 노후를 보내고 있는 어려운 형편의 노인들을 수시로 방문해 위로하고, 몸이 불편해 혼자 생활하기에 무리가 있는 독거노인을 절에 기거시키며 공양하고 있으며 어버이날에는 봉사자들과 함께 외로운 노인들을 찾아가 목욕 봉사활동을 펼치고, 생활비를 지원과 함께 빨래·청소를 도맡아 하는 등 든든한 지원자가 돼 주고 있다. 
 
△ 교도소 재소자의 대부
 
 동봉스님은 진주교도소 재소자들의 대부로 통한다. 동봉스님과 진주교도소의 인연은 1975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단순한 위문행사로 시작된 진주교도소와의 인연은 “종교적으로 교화된 재소자는 출소 이후 재범률이 극히 낮다”는 한 교도관의 말로 인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봉스님은 한때의 잘못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외롭게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재소자들을 위해 수시로 교도소에서 자매법회를 열어 보시금을 전달하고 점심공양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또 매년 설·추석 등 명절과 부처님 오신날에는 재소자를 위로방문하고 떡을 공양하고 있으며, 재소자뿐 아니라 교도대원을 위해서도 다과를 공양하고 있다. 이와 함께 10년 전부터는 가족도, 면회 올 사람도 없는 재소자들을 위해 자매연결을 하고 있다. 재소자들이 출소 후 다시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않고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스님의 또 하나의 작은 배려다.
 
△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마음도 남 다른 동봉스님은 부모의 사망·이혼 등으로 의지할 곳이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공부시키고 사회의 동량으로 성장시켰다. 오갈데 없는 아이들을 거둬 아버지의 사랑으로 키워낸 것이다. 또 경제적인 여건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999년 3월 10명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3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10명의 청소년들에게 30만원씩, 12년간 120명에게 총 3,600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77년에는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주지로 있던 의곡사 입구 사찰 터에 사비를 들여 20여종의 놀이기구를 갖춘 놀이터를 만들어 선물했다. 변변한 놀이시설하나 없던 상봉동동과 봉래동 일원 어린이들에게는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이었다.
 자기를 아끼지 않고 주위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끝없는 사랑과 정성을 쏟으며 부처님의 자비와 박애를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는 동봉스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추는 스님에게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정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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