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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日수탈 한국도서 1205책 반환 합의
APEC 정상회의서 이명박 대통령과 칸 나오토 일본 총리 만나
기사입력: 2010/11/15 [14:06]
뉴스경남 기자 뉴스경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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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제18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칸 나오토 일본 총리 간에 조선왕조의궤를 포함한 150종 1205책의 반환을 합의했다. 사진은 대례의궤(大禮儀軌) 겉 모습(왼쪽)과 속지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일본 궁내청에 보관돼 있는 조선왕조의궤 81종 등 150종 1205책의 도서가 우리나라로 반환된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1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제18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칸 나오토 일본 총리 간에 조선왕조의궤를 포함한 150종 1205책의 반환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한·일 정상 간 합의에는 양 국의 외무장관(한국:김성환, 일본:마에하라 세이지)이 배석, 정상 간 합의내용을 명문화한 '도서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협정'에 서명했다.
 이번 반환에 앞서 정부는 2009년 5월부터 외교부, 문화재청 등 관계부처가 긴밀하게 협력하며, 일본 궁내청 소장 한국도서 반환 문제를 검토해 왔다.
 특히 지난 8월10일 일본 칸 나오토 총리는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도서의 반환"의사를 밝혔다.
 반환 대상의 논의는 1일부터 2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한·일 전문가 간 의견 교환을 통해 이뤄졌다.
 일본 측 전문가가 반환대상을 설명하고, 우리 측 전문가가 이해를 표명함으로써 양국 정부 간 합의의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 측은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이상찬 서울대 규장각 교수, 박대남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등이 참여했다.
 이번에 반환되는 도서는 '조선왕조의궤' 81종 167책을 비롯해 기타 규장각도서 66종 938책, '증보문헌비고' 2종 99책, '대전회통' 1종 1책 등 150종 1205책이다.
 다만, 최근에 반환 여부가 주목됐던 '제실도서'와 '경연도서'는 우리 측 전문가들이 확인한 결과, '일본 총리의 담화기준'과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반환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제실도서'의 경우 일본 궁내청은 지난 1903년부터 '제실도서지장인'을 장서印을 사용했고, 우리나라는 1909년부터 규장각에서 '제실도서지장인'을 장서印으로 사용하는 등 한·일 모두 동일 명칭의 장서印을 사용했다.
 하지만 한·일 전문가들이 장서印을 비교한 결과, 모두 일본 궁내청이 날인한 장서印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경연도서'의 경우에도 일본 측이 날인한 장서印을 통해 확인한 결과, 1891년 이전부터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던 도서로 확인됐다.
 이번에 반환되는 도서와 관련, '조선왕조의궤'는 조선총독부가 지난 1922년 5월에 일본 궁내청에 기증한 80종 163책과 일본 궁내청이 구입한 1종 4책 '진찬의궤' 등 81종 167책이다.
 특히 지난 2006년부터 민간단체(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에서 환수활동을 추진했고, 지난 2006년 12월8일부터 올 2월25일까지 국회 차원에서 2차례의 결의문이 채택되는 등 각계에서 노력한 결과가 결실을 맺은 것으로 평가된다.
 규장각 반출도서 등에는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 지난 1906년에서 1909년 사이에 '한·일 관계상 조사 자료로 쓸 목적'으로 반출해 나간 규장각본 33종 563책과 통감부 채수본(采收本) 44종 465책 등 77종 1028책이 있다.
 이 중 11종 90책은 지난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에 따라 반환됐고, 이번에 잔여분 66종 938책이 반환됨으로써 이등박문 반출도서 모두를 반환받게 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무신사적(戊申事績, 1책),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 1책),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 10책) 등 6종 28책은 국내에도 없는 유일본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7책), '여사제강'(麗史提綱, 14책), '동문고략'(同文考略, 35책) 등 7종 180책은 국내에 있는 도서와 판본이 다르거나, 국내에는 일부만 있어 이번 도서 반환으로 유일본으로써 전질(全帙)이 될 수 있는 도서들이다.
 '증보문헌비고'(2종 99책)는 우리나라의 역대 문물제도를 정리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재난 1908년(융희 2년)에 간행된 것이다.
 이 중 1종 51책은 1911년 8월10일에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에 기증한 것이며, 나머지 1종 48책은 '조선총독부 기증' 첨지가 있어 반환대상에 포함됐다.
 이와 함께 '대전회통'(1종 1책)은 1865년(고종 2년)에 편찬된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으로, '조선총독부 도서'라는 장서印이 날인돼 있어 반환받게 됐다.
 이번 도서 반환은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라는 양국의 역사적 갈등을 문화교류 측면에서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일 간 도서반환을 명시한 이번 '도서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간의 협정'은 양 국의 국내적 절차를 완료하고, 상대국 정부에 이의 사실을 통보하면 늦은 쪽의 통보가 수령된 날을 기준으로 발효된다.
 이에 따라 실제적인 도서 반환절차는 한·일간 세부적인 논의를 거쳐 협정 발효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이뤄지게 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협정 발효 이후 도서반환 절차가 '안전하게,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면서 "이번 도서 반환이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 반환의 상징적 사안인 만큼 전시·활용과 보관 등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되찾는 1205책, 주요 도서들은

 주요 환수도서 가운데 ‘대례 의궤(大禮儀軌)’는 1897년 10월13일 성립된 한국 최초의 자주적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의 탄생과 관련된 모든 의식을 정리한 책이다. 전날 거행된 고종황제 즉위식에 필요한 책보(冊寶; 임명장과 도장)를 싣고 환구단(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내)으로 가는 반차도(班次圖)와 함께 향과 보책을 싣고 가는 황금색 가마, 책보, 각종 의장 등을 그린 채색도가 실려 있다. 다른 의궤와 달리 책문(冊文)과 금보(金寶)등을 만든 보책조성소(寶冊造成所)에서 만들었다. 1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9건을 제작해 4대 사고와 규장각, 시가원, 비서원, 장례원, 환구단에 봉안했다. 반환되는 책은 오대산 사고본이다.
 ‘왕세자 가례 도감의궤(王世子嘉禮都監儀軌)’는 1881년(고종18, 광서8, 임오) 11월에서 1882년 2월 사이 당시 왕세자인 조선조 제27대이자 마지막 황제 순종이 순명왕후 민씨와 올린 가례를 기록한 책이다.
 ‘우암집(尤庵集)’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 정치가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의 문집이다. 1717년에 54책이 간행됐고,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보완됐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반출한 것은 규장각본 우암집 한질(60책)인데 이는 1717년에 간행된 54책에 이후 보완된 6책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에서는 60책짜리 우암집 1건만 확인된다. 원래 54책짜리였던 것을 조선총독부가 두 차례에 걸쳐 4, 2책을 각각 더해 1915년에 60책으로 만든 것이다.
 ‘송자대전 (宋子大典)’은 송시열의 시와 각종 글을 모아놓은 시문집이다. 우암집을 대본으로 간행됐다. 평소 주자를 흠모한 송시열의 뜻을 존중해 그의 문인들이 ‘주자대전(朱子大全)’의 예에 따라 ‘송자대전’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송시열은 83세까지 장수하며 많은 분량의 시문을 남겨 책수가 총 102책에 달한다. 개인문집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송시열의 학문과 문학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조선 후기 정치사 연구에 꼭 필요한 자료다. 이토가 반출해 간 송자대전은 원래 규장각 소장본이다. 현재 규장각에는 1787년(정조 11) 목판본 4종류와 기타 1종이 있다.
 ‘동문선(東文選)’은 성종의 명에 의해 서거정 등 문신 23명이 참여해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초기까지 저작된 시문을 정리해 편찬한 것이다. 중국 양나라 소명태자의 ‘문선(文選)’을 본떴다고 해서 성종이 ‘동문선’이라고 명명했다. 1478년(성종 9) 간행본 133권 45책은 ‘정편 동문선’이라고 부르고, 1518년(중종13) 간행본 23권 11책은 ‘속 동문선’, 1713년(숙종 39) 간행본 33권 15책은 ‘별본 동문선’ 또는 ‘신찬 동문선’이라고 부른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작품들까지 수록하고 있어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이토가 반출한 동문선은 56책이라고 것으로 보아 정편동문선 45책과 속동문선 11책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내역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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