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     

지난 7월‘박준채 시인’의 생전작품이 발굴되어 화제가 된 기사를 보았다. ‘박준채 시인’은 학생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나주역 통학열차 사건의 주인공이다. 나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1929년부터 일본유학 시절 등 10여 년 동안 쓴 작품 31편이 최근 검증됐다는 내용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폭제가 된 나주역 통학 열차 사건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와 나주를 오가는 열차에서 발생했다. 일본인 학생이 당시 박준채 시인의 사촌 누나인 박기옥을 희롱하자 광주고보생이었던 박 시인이 주도적으로 일본 학생들에게 맞섰고 광주 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간 충돌로 이어졌다. 며칠 후인 11월 3일 일왕 생일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후 1930년 3월까지 다섯 달 간 전국 300여 개 학교에서 5만4천여 명의 학생이 동맹 휴교와 궐기에 참여했으며 1,460명이 검거될 정도로 전국적인 항일 독립운동으로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운동이다. 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및 6‧1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두 학생이 관여하거나 주도하여 가능했다.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다. 광주 학생항일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한 학생의 날이 기념일 제정 53년 만인 2006년 11월 3일부터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학생의 날’로 기념해온 11월 3일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자리 잡게 되어 93주년을 맞게 됐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11월 3일의 역사적 의의는 어떤 것일까? 

굴욕 속에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음으로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찾자고 일어섰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거룩한 애국정신이 아닌가 한다. 일제의 발악적인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일제 말기 극악한 상황에서도 학생 독립운동은 계속되어 마침내 광복의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학생의 신분임에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불의에 항거하고 투쟁하는 등 꾸준히 항일운동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었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 어린이날은 있어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 어떻게 제정되었으며 어떤 수난을 겪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있었던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기도 하며, 우리 학생들의 거룩한 항일 독립운동정신을 이어받아 해방 후는 3‧15의거, 4·19혁명이 있었고 군부 독재와 항거한 5·18 민주화 운동으로 맥을 이어 오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많은 희생속에서 해방을 맞았고 독립국가로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학생들의 독립정신과 숭고한 의식도 잊고 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이하여 이날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올해 역시 11월 3일에 제93주년 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이 개최될 예정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학생들이 하나 되어 새로운 미래를 만든 위대한 역사.‘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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